고등학교 재학 중 석탄 광산에 몇 번 견학을 갔다. 우선 온통 시커먼 석탄으로 뒤덮인 광산 입구에 들어서면 기가 팍 죽는다. 땅바닥도 시커멓고 건물도 그렇고 다니는 차들도 모두 시커멓다. 갱도 안으로 연결된 철로를 따라 탄차를 타고 들어갈 때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목덜미를 적실 적엔 으스스 두려움이 밀려온다. 갱도를 받친 상처투성이 갱목들은 금방 우두둑 무너져 내려 숨통을 누를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광부들이 히죽거리며 손을 흔들 때면 하얀 이 사이로 날카로운 저주가 나오는 것만 같다. '더 들어가 봐라. 좋은 게 있을 거다.

키득키득'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두려웠다. 그러나 그 무서운 광경도 갱도의 끝에 다다르면 사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름해 막장! 그곳엔 지금까지 긴 철로를 지나오면서 본 그냥 까만 석탄과 까만 광부와 까만 철로와 까만 무서움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 더해 죽음까지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었다. 곡괭이로 탄맥을 찍을 때마다 쉴새없이 벽과 천장에서 쏟아지는 탄가루는 입과 코에 특수마스크를 썼어도 속절없이 파고들었다. 자욱한 탄가루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좁은 갱도의 끝에서 광부 대여섯 명은 그렇게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선정적이고 잔인하며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무리한 상황 설정, 자극적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총칭하는데 현실에서는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전개된다.

주인공은 항상 출생의 비밀이 있으며 꼭 재벌가의 아들이나 딸과 사랑에 성공하는 신데렐라가 등장하거나 같은 핏줄인 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괴로워한다. 또한 불륜이 당연한 듯 이뤄지고 주인공은 주변의 착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반드시 복수하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처럼 너무나 뻔한 설정과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말초적인 관심을 자극하는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그런데 막장드라마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도 참 많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서의 제2인자 처형 소식을 보면 낭떠러지를 향해 치닫는 브레이크 터진 자동차 같아 아슬아슬하다. 그런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세력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더 현기증이 난다. 국회의원들의 언행도 비슷하다.

입만 열면 국리민복을 외치지만 그들의 안중에 국민은 없다. 사사건건 이전투구로 으르렁대는 꼴이 막장 속으로 뻗어 있는 철로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 마음 속에는 이런 것을 구경하기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걸까? 막장드라마를 많이 시청하고 있고 그것을 동료와 이야깃거리로 삼아 반추하니 말이다. 이러면 안 된다는 아우성이 들리는데도 안 들으려고 귀를 막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나라가 결단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한데도 그저 흰 이만 드러내며 웃고 있다. 선각자도 교육자도 작가도 사업가도 그저 지친 모습으로 쳐다만 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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