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머리에 고깔을 씌우고 잔칫상 앞에 앉혔다. 그러나 그 날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는 어르신은 한 분도 안 계셨다. 입소할 때 보호자가 적어 놓은 날짜가 바로 그분들의 생신인 것이다. 편의상 한 달에 한 번 생일잔치를 하니, 물론 그날이 정확히 당신의 생일이 아님은 확실하다. 날짜는 그렇다 쳐도 생일의 의미도 잊고 계신 듯 표정없는 얼굴로 진행자가 시키는 대로 손뼉 치고 케이크 불도 끈다. 휠체어를 탄 아들이 "어머니 만수무강 하세요"라며 어눌하게 인사하는 데도 어르신의 눈은 허공을 향해 있다. 노인요양보호시설에 모자가 함께 입소해있는 현실에 고령화의 심각성을 읽는다.

며칠 전 친정 동기간이 모여 어머니 팔순 잔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했다. 환갑을 못 채우고 돌아가신 친정아버님에 대한 회한으로 칠 남매가 모두 한복을 맞춰 입고 뷔페식당을 빌려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기념할만한 것은 모두 하고자 했다. 해마다 생신이 돌아오면 동기간들이 모여 용돈을 드리고 밥도 같이 먹었지만, 칠순이 됐을 때 잔치를 할지 망설이게 됐다. 너무나 정정하신 어머니와 딸들이 여행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으로, 어머니 친구들만 초대해 집에서 밥을 대접하며 칠순잔치를 넘겼다. 몇 해 전 갑작스럽게 복부 수술을 하시고는 후유증으로 허리도 굽어지고 아프시다는 소리를 요즘 부쩍 많이 하신다.

구순 잔치를 할 수 있을지 몰라 팔순 잔치는 좀 크게 해드리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동기간들 사는 모양새가 그만 그만 하다 보니 회갑잔치처럼 성대하게는 할 수 없어 조촐하게 지인들 모시고 하루 지내기로 결정했다. 사회복지사 과정을 모두 수강하고 실습만 남아 있었는데 도무지 시간을 못 내다가 크게 마음먹고 기관에 실습 요청을 했다. 실습 첫날, 어르신들께 인사하고 다니는데 예쁘장한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기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잠시 뒤돌아서서 다시 곁을 지나는데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신체 장애도 있지만 감정의 둔마, 치매 등 정신적 장애가 아주 심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기 인형을 셋째 아들이라고 돌보시는 할머니는 식사 후 꼭 돌아 앉아 인형에게 젖을 물리신다. 맛있는 음식도 맛있는 줄 모르시고 좋은 놀이도 좋은 줄 모르신다. '있을 때 잘 하라'는 흔하디 흔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생신 때 함께 게이트볼 치는 친구들에게 밥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 드려야겠다. 자식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용돈을 받으면 표정관리 안 되게 웃으시는 어머니, 아직도 반짝이 달린 고운 색 옷을 즐겨 입으시고 얼굴에 분도 바르시며 립스틱도 곱게 바르는 어머니의 곧은 정신이 얼마나 다행인가. 예전보다 허리가 좀 굽어지긴 했으나 꽃무늬 수영복 입으시고 운동하시는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보며 팔순잔치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내가 부끄럽다. 그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내 얼굴 알아보고 반가운 미소 지으시는 모습을 보러 수시로 친정 나들이 해야 할 것이다.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때 해드려야 한다. 그날이 바로 잔칫날이다.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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