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 집 전화는 통화중이다.또 고모님하고 통화를 하시는가보다. 무슨 말씀이 그리 많으신지 전화기를 잡으면 한 시간이 짧다.팔순이 훨씬 넘은 어머님과 시고모는 참 유별난 시누이와 올케다. 30여 년 가까이 어머님과 시고모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저럴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본다. 고모님과 우리 어머님은 같은 경로당엘 다니신다.

경로당에서도 두 분의 관계는 유명하다. 고모님은 육거리시장 근처에 사신다. 어머니가 두부라든가 부식이 필요하면 봉지봉지 사들고 잰걸음으로 오신다. 물건 값을 가지고도 받네 마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럼 다시는 안사다 준다"고 하는 말에 결국 어머니가 지신다. 그렇다고 매일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고모님이 못 마땅한 행동을 하면 내게 푸념을 늘어놓으시곤 한다. 그럴 때 마다 두 분 사이를 잘 아는 터라 어머니가 잘 하셨어요 라며 슬쩍 편을 들어준다. 잘못을 한들 얼마나 했을까 싶어 나 나름대로 머리를 쓴 요량이다. 그러다가도 한 분이 경로당에 빠지는 날이면 그 날 있었던 일을 전화로 녹화 중계를 하신다. 30분은 기본이다.

명절이나 아버님 생신이 돌아오면 고모님은 꼬깃꼬깃한 돈을 어머니에게 주신다.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 오빠에게 줄게 어디 있냐"고 뿌리치시는 어머니와 "올케한테 주는 거 아니고 우리 오빠한테 주는 건데 왜 안 받는냐 "는 고모님의 언쟁과 함께 꼭꼭 접은 돈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결국엔 어머님이 받는 걸로 일단락된다. 이런 두 분의 사이로 인해서 우리 자식들은 무엇을 할 때 마다 항상 고모님과 함께 하게 된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함께 보내드리고, 음악회가 있을 때도 항상 세트로 보내드린다. 몇 해 전에는 어머님 팔순기념으로 제주도에 보내드렸다.

그때도 고모님과 함께였다. 갔다 오셔서 조카며느리 덕에 잘 갔다 왔다며 기분 좋아 하셨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집을 멀리하고 싫어해 '시'자가 들어가는 음식도 안 먹는다는데 우리 어머님과 고모님을 보면서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배운다. 맏며느리인 나는 시부모님께 이렇다 할 효도를 하지 못했다.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정갈한 음식 한번 해드리지 못했다. 크게 효도를 못하니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라도 해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아버님까지 세 분이 한 세트처럼 움직이셨는데, 얼마 전 아버님의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 하셨다.

올해 '미수' 이신 아버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병원에 갈 때 도 올케와 시누이는 항상 같이 다닌다. 허리가 굽어 힘에 겨워 걸어가는 고모님은 지팡이가 아닌 우산을 짚고 다니신다. 소리도 나지 않고 비가 오면 비를 가려주니 일석이조란다. 두 분이 의지하고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오늘도 팔십이 넘은 두 여인은 남편이자 오빠인 한 남자의 건강을 염려하며 서로 조심해서 걸으라고 주고 받으며 병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아, 성큼 다가온 봄의 소리가 아버님 귀에도 들리시려나….



/김복회 청원군청 주민생활과 복지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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