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들어 첫 번째 맞는 일요일,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의원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무공천 실현에 마음을 합쳤다는 깜짝 속보가 떴다. 지방정치인 밑받침 없이 중앙정치 기반이 용이치 않은 현실정치에서 기초단체 정당 공천제 폐지는 쉽지 않은 결단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 다르다'는 정치인들의 구태 습성으로부터 가히 혁파라 할 부분 아닌가. 지난 대선 때 각 당 후보자들이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로 또 한바탕 시끌하겠구나 싶었다.아니나 다를까 바로 공방전에 돌입 한다. 본질적인 문제보다 언저리 문제로 말꼬리 잡기 논쟁 내지는 그럴싸한 말 포장에 모두 열을 올리겠지. 갑갑증이 일어 집을 나섰다.


진천읍 뒤편을 두르고 있는 남산골로 모처럼 발걸음을 했다. 겨울을 난 가랑잎 아스락 대는 소리가 이따금 스칠 뿐, 숲은 아직 조용한데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흙살의 느낌이 폭신하다. 얼어붙었던 흙덩이가 봄기운에 푸슬푸슬 몸을 풀어 터를 고르고 있음이다.


잘 다져진 등산로 곁에서 숲을 지켜가고 있는 소나무들이 진한 솔 향으로 맞아준다. 거친 소나무 등걸 속에서 물관부를 타고 흐르는 봄의 소리가 솔잎을 깨웠는가보다,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니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을 떠가는 구름이 유유하다. 마음이 한결 누그러워진다.


커다란 굴참나무 중간 중간 자리하고 있는 진달래나무에 수수알 만한 꽃망울이 다그르르 매달려 햇살을 받고 있다. 꽃샘바람 들듯 짓궂은 마음이 들어 실한 꽃눈하나 헤집어 보니 그 작은 몸속에 붉은 꽃잎이 오그리고 들앉아 있는 게 아닌가. 복중의 태아, 바로 그 형상이었다. '아하, 이 생명체도 들고 날 때를 알고 이렇듯 기다리는 중이었구나.' 하찮게 놀린 손동작에 애 궂은 꽃잎 하나가 생을 펴보지도 못하고 가뭇없이 발아래 사라지고 말았다.


발치께로 이름 모를 푸릇한 잎줄기가 죽은 포기 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어디 한쪽 숨어있을 찬바람이 해살을 떨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가랑잎으로 다독이다 보니 삶의 이치가 여기 숨 쉬고 있음이 느껴진다.

숲은 작고 여린 초목으로부터 생명이 살아난다. 크고 잎 넓은 나무들이 뒤늦게 잎을 피우는 까닭은 작은 식물들이 먼저 햇살을 받아 꽃피우고 씨앗을 매달 때를 기다려 주기 위함이다. 시간차를 두고 꽃을 피우고, 잎을 넓혀가는 과정을 통해 배려와 양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본 덕목을 보이는 것이리라. 그들은 민초들의 강한 생명력이 자신을 지탱해 줄 지지기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게다.


3월 숲에 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제 몸 크기를 알고 제 앉을자리, 꽃피울 때를 스스로 가늠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생태계의 질서가 한눈에 보인다.하물며 사람살이에서야….



/김윤희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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