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전시청에서 있었던 퇴직공무원연수 시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감사장을 받으니 계면쩍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꼈다. 동행한 아내가 대전에서도 통증이 있어 청주에 오자마자 MRA를 찍은 결과 수술을 받게 됐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다친 줄만 알았더니 오래 전부터 있던 증세이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무척 미안했다. 입원을 했다가 크리스마스 이튿날 수술을 받을 때, 너무 혹독한 아픔을 겪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집안과 가족들을 위해 40년 가까이 몸과 마음을 혹사한 영향 같았다. 2주동안 입원 했다가 퇴원을 하고 주기적으로 진찰을 받고, 2~3일마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 홀로서기 수련


평소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놓으면 먹기만 하다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하니 홀로서기 수련을 제대로 한 셈이다. 밥을 하는데도 진밥, 된밥, 누른밥 등의 시행착오를 겪으니 이론과 실제가 다르고 말은 쉬워도 실천은 상상 외로 힘들었다. 세상일이 쉬운 것 하나 없고, 만만한 것 하나 없다는 어느 지인이 말한 의미도 알 것 같았다.

솔직히 설거지하기도 귀찮았고, 간혹 어린애처럼 반찬 투정하던 사람이 반찬거리와 간식 사오는 것도 신경 써야만 했다. 바쁜 중에도 병원으로 문병을 온 많은 분들의 따뜻한 정도 고마웠고,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이 제일이라는 평범한 진리도 알았다. 장기간 힘겨운 우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어느 독거노인 생각도 날 정도였으니 이를 계기로 많은 교훈을 얻은 셈이다.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어느덧 경칩도 지나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하는 새봄을 온몸으로 느낀다. 모처럼 두꺼운 옷과 걱정거리도 벗어놓고 산으로 향했다. 개구리 소리를 행진곡 삼아 산에 오르니 겨우내 움츠렸던 산천초목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문득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한 포기 들풀이었다. 길가에서 낙엽을 헤치고 호호 불며 뾰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직은 꽃망울도 잘 보이지 않지만 머지않아 노란 꽃을 피울 그날을 그려보며 조금이라도 더 봄볕을 받으려 고개를 들고 있다.

비교적 덜 추웠던 겨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눈보라치고 매서운 삭풍 속에서 용케도 버틴 강인한 생명이 참으로 경이롭다.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햇빛과 낙엽 몇 장 덮어주었을 뿐인데…. 연약한 한 포기 들풀이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퇴직 후 적응 잘 하고, 우리도 홀로서기 하는 힘을 기르라고.홀로서기는 혼자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이나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나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를 그려보며, 부단한 자기계발로 자아완성을 하며 남 탓과 의존도 하지 말고, 튼튼하고 바른 몸과 봄볕 같은 마음으로 은혜를 알고 보답하며,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신바람 나는 삶을 살자는 것이리라.



/김진웅 前 경덕초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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