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이 부토 전 총리의 피살로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테러로 파키스탄 민주화의 향후 진로가 극히 불투명해졌다. 이슬람 국가로서는 세계 유일의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핵 안전과 확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석유와 금, 채권 등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또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등 세계 경제도 요동치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내년 1월8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유세 도중 저격에 이은 자살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부토 전 총리의 불행은 그녀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는다. 역시 총리를 지낸 그녀의 부친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뒤 2년 만인 1979년 정적 살해 사주라는 혐의로 군사정권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고 그녀의 남동생 2명은 각각 외국에서 의문사하거나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인도의 현대사가 네루 간디가의 수난사라면 파키스탄의 현대사는 부토가의 수난사인 셈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파키스탄 국민이 이성을 되찾는 일이다. 파키스탄은 전국 곳곳의 폭력 사태로 무법천지화하는 등 부토 전 총리 암살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난 군중이 경찰에게 발포하는가 하면 철도 등 공공시설 파괴도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부토 전 총리가 원하는 게 파키스탄의 민주화였다면 이런 상황 전개는 혼돈은 결코 해답이 못 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 국민은 부토를 영광되게 해야 한다"며 민주화 일정 준수를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파키스탄의 정정 불안은 국제적으로도 골칫거리다. 유가 상승 등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롯된 미국발 위기에 이은 파키스탄발 파동으로 국제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만의 하나라도 이번 사태가 민란으로 비화돼 핵무기가 파키스탄 전역에 산재한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의 수중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큰일이다.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파키스탄 국민과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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