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고 한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하던 나는 책과 거리가 멀었었다.

이런 내게도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년이라는 공백을 딛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을 한 것이다. 언덕 위에 자리한 2층의 중학교는 꿈에 그리던 동산이었다. 그 곳에서부터 나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등록금 내기도 빠듯한 시절, 책을 사서 읽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학교도서관을 주로 이용했고 친구들에게 빌려 읽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일기장 끝 페이지에 읽은 책의 제목을 기록을 해 나가게 됐다. 한 권, 두 권 목록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독서록'의 모태가 됐다. 고교시절엔 닥치는 대로 빌려 읽었다. 양서, 악서 구분 없이 내 손에 들어오는 족족 읽고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직원들에게 빌리고, 당시 유행했던 도서대여점에서 몇 백 원의 사용료로 빌려 읽었다.

그 후로는 도서관이 많이 생겨 가까운 도서관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6년도 직장동호회인 '책 읽는 모임'에서 회원들과 책을 공동으로 구입해 읽게 됐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 하다 보니 나의 보물 1호인 '독서록'에 지난 1월 1000번째 책을 올렸다. 1000권 돌파를 기념하는 자축파티 사진을 카카오톡에 올렸더니 축하 메시지가 많이 왔다. 한 지인이 내게 1000권 중 가장 재밌었던 책을 추천 해달란다. 너무 막연했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 소중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부모가 자식이 다 소중하듯 어느 한권을 따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또 누군가는 읽은 책이 다 생각나냐고 묻기도 했다.

읽으면서 행복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남는 물이 없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라듯 책을 읽고 나서 '아, 참 좋다'라는 기억뿐이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다보니 항상 내 눈에는 책만 보인다. 어느 집을 방문해도, 업무상 다른 과에 들려도 책장에 있는 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도 마트를 가도, 남들은 커피를 마시고 쉬는 동안 난 전시된 책을 돌아본다.

요즘 TV 뉴스에서 인터뷰 할 때 보면 배경에 항상 책꽂이가 보인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뒤에 나오는 책에 눈이 먼저 간다. 서울에 있는 딸아이 집에 갔을 때 우연히 길옆에 있는 헌책방이 보였다. 책 냄새가 좋아 지나치지 못하고 몇 권을 사오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도 이사 후 버려진 책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하고 볼만한 책을 챙겨온다. 전에 근무하던 부서에선 생일 때 책을 구입해 덕담을 적어 선물로 줬다.

옆에 있는 직원이 그 선물로 받은 책을 읽지도 않고 책꽂이에 그냥 두고 있어 안 읽으려면 나나 달라고 하니 미련 없이 줬다.

내겐 소중한 책이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직원들의 생일축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긴 책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휴일이면 깨끗이 청소를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책들이 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에 삶이 한층 평온하고 충만해진다.



/김복회 행우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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