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새정부 출범 급선무…취임후 공천"...朴 "다른 의도 엿보여…집단행동 불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이경숙 인수위원장, 맹형규 기획조정분과 간사가 2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총선 공천 시기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갈등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간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공천 시기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온 이 당선인이 1일 kbs 신년대담을 통해 대통령 취임일(2월25일) 이후 공천자 확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자 다음날인 2일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

친이(親李)-친박(親朴) 인사들간 물밑 신경전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양측간 대립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

이 당선인은 대담에서 "정부조직법도 바꿔야 하고 각료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공천하는 문제와 겹쳐버리면 국회가 안 된다. 공천이 안 되겠다는 국회의원이 거기(국회)에 나와서 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대구 경북신년교례회에 참석,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왼쪽부터) 등과 잔을 맞대고 있다.

이는 정부조직법 개정과 총리 인준 등 새정부 안착을 위한 필수적 과업들이 당내 공천으로 덜미를 잡혀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인 셈. 이 당선자의 한 핵심측근은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당의 대오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줄 수 있겠느냐. 오히려 반대세력으로 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해, 이 당선자의 의중을 대변했다.

그러자 이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에 내려간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과 그측근들을 향해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놓았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로 정치 상황을 정리하던 평소 그의 화법과는 사뭇 달랐다.

박 전 대표는 대구.경북 지역 당 신년하례회 참석에 앞서 이 당선인의 공천 시기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석연찮은 이유로 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천을 그렇게 뒤로 미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당헌.당규도 소용없고 승자 측에서 마음대로 하는 게 법이 된다는얘기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그는 이 당선인과의 회동을 거론하면서 "당선인이 (회동에서 공천 시기를) 분명히 늦추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보도가 달리 나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불쾌한 감정도 감추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강재섭 대표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이날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강 대표가 늦어도 총선 한 달 전까지 단계적으로 공천을 완료하는 방안을 제시한 데 대해 "선거운동 시작을 보름 남겨놓고 발표한다...굉장히 의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가 이 당선인과의 교감 속에 공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강 대표가 1월 중순 발족시키겠다고 한 총선기획단장을 이 당선인의 핵심측근인이방호 사무총장이 맡게되는 것 역시 박 전 대표 측에선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반응에 대해 이 당선인 측은 최대한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면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무대응' 전략인 셈이다.

이 당선인의 주호영 대변인은 박 전 대표의 언급에 대한 직접적 논평은 자제한 채 "우리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오늘 강재섭 대표가 한 말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에 공천을 일임하겠다는 의미이지만 어쨌든 '3월중 공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핵심측근인 이방호 사무총장은 "국무총리 등 내각 인사청문회를 위해 2월 임시국회의 안정적 운영이 필요하고 신당과 '이회창당'의 공천 상황도 봐가면서 전략적으로 공천하려는 것일뿐 특별한 의도는 없다"면서 "1월말 공심위를 구성하면 3월 초순까지는 공천을 완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 의원들은 이 당선인이 박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화답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며 정면 대결을 준비중이다.

이처럼 양측 모두 각자 입장을 고수하는 만큼 대선후보 경선 당시의 극한 대립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당선자 측에서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 좋은 상황으로 갈 것 같다"면서 "취임일인 2월25일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 없다. 집단행동이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권, 대권이 분리돼 있는데 당선인이 그런 식으로 (공천시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공천작업을 늦추는 것은 결국 이 당선인의 핵심그룹에서 비밀 작업을 통해 공천자를 내정하겠다는 것으로 '밀실공천'을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측근도 "이 당선인의 언급은 결국 공천 작업을 다른 곳에서한다는 말로 해석된다"며 "결국 당내에서 밀실공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계속 모른 척 한다면 우리도 살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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