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생활을 접고 시작한 대학 생활,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일단 대학에서의 삶은 학문의 자유와 진리추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영위되며, 각박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동료 교수나 학생들과 순수하고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어 좋다.그러나 대학이 항상 한가한 곳만은 아니다. 내가 부임하고 난 후 우리 대학은 외부로부터의 크고 작은 요구와 압력에 시달려 왔다. 특히 3년 전에는 교과부가 부실대학을 지정,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전국의 대학이 시끄러워진 적이 있었다.

우리대학은 이름도 생소한 구조개혁 선도대학에 지정되는 불명예를 얻게 됐고, 차곡차곡 쌓아가던 발전의 토대는 단숨에 붕괴되고 말았다. 올해는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 때문에 대학이 또 시끄럽다.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이 정부의 대학 정원 감축 정책과 맞물려 전국의 대학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정원을 줄이라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불과 0.5~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재정 지원 사업에서 정원 감축에 3~5점이라는 점수를 배정했으니, 재정지원을 받으려는 대학은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다.이런 방식으로 대학은 외부로부터 크고 작은 요구와 압력에 시달려 왔다.

그 동안의 정부 정책과 사업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곧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거나 새로운 관료가 대학 정책을 맡으면 재정지원을 빌미로 새로운 압력이나 요구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관료가 취임 할 때마다 대학정책이 바뀐다는 건 대학발전을 위한 정부의 장기적인 안목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써 대학이 정부 정책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 번 다른 외압에 시달리는 대학을 보면서 나는 대학정책의 방향을 대학에 맡겨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것이며, 대학의 교육과 연구 기능이란 것도 일관된 정책과 투자를 통해서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밖에서 바꾸려 할수록 바뀌지 않는 것이 대학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의 정책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대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자율적 변화와 갱신의 역량을 소유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김건호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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