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힐링장소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자주 찾아가서 마음의 안정을 얻어 오는 곳이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여행도 즐기고, 등산하는 것도 좋아하고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며 살았지만 정작 그런 장소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곳이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나만의 멋진 장소가 머릿속에 없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문화적으로 뒤처지고 각박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서둘러 아는 풍경을 얘기하고는 곰곰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는 마치 무속인 앞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현재 의식하지 않았던 사고와 행동이 주어지는 문장을 따라 형상화 된 나를 설명 해줬다. 내가 발설하고도 신기하게 나다워서 섬뜩하고 놀라웠던 경험이었다.

나는 외향성이다. 그리고 사회형이다. 외향성의 사람은 사물보다는 사람이 더 가깝고 글보다는 말이 더 편하다. 고민이 있을 때 혼자 사색하기보다는 사람 속에 묻혀서 떠들썩한 게 더 좋다. 사회형의 경우 아름다운 풍경도 혼자 보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 여행의 대부분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장소에 가든지 동행한 사람과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힐링했던 좋은 장소를 추천해 주려고 고심했지만 장소보다 사람이 좋았던 곳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위로가 되는 곳, 그곳이 나의 힐링 장소였던 것이다. 처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들을 찾았다.

새벽 남대문시장을 돌아보고 나서 의욕을 추슬렀고, 음성 꽃동네에 가서 내 삶에 대한 감사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의지를 세웠다. 그곳에는 부모로부터 유기된 장애우와 자녀로부터 유기된 노인들이 있다. 꽃동네에 들어서면천진한 장애우와, 삶의 욕구로부터 더 이상 미혹되지 않은 노인들의 순한 눈빛들이 나를 위로한다. 아직은 견딜 만하지 않느냐는 듯. 입에서 도로 나오는 밥을 걷어 먹이다 보면 비위가 상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족했다. 진이 빠지게 힘든 노동으로 봉사하고 난 후 산 한번 바라보면 등줄기에 힘이 가해진다.


꽃동네는 거의 매일 돌아가신 어른을 위한 연도가 있다. 어떤 날은 세 분이 함께 세상을 뜨기도 한다. 죽음이 당연한 일상처럼 일어나는 그곳에서 나는 또 내 목숨 대한 감사도 느낀다. 아직은 젊고, 살아 있어서 기쁜 날이 아닌가.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축복'이라는 문장이 심장에 파고들어 말초신경까지 퍼진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헌금하고 주머니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꽃도 곱고 산도 푸르다. 아름다운 사람이 가득한 그곳이 사람에 치인 내 마음을 풀어주는 곳이다. 맑은 물과 푸른 산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의 쉼터다. 그래서 나는 늘 힐링한다. 저녁 찬거리 사러 나선 시장에서조차.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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