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대 대선을 통하여 확실히 잃은 것이 있다.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잦은 정당의 해산과 창당, 당내 경선에 대한 시비와 파행, 경선을 거치지 않은 탈당 후 입후보 등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선거임에 틀림없다.

정당은 헌법적으로 보호되는 정치단체이다.

이는 정치학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당이 국민들의 정치참여 확대를 통하여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의 동질성을 높일 수 있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선택 기준을 제공하고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가 되어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정당의 역할은 어땠는가?

정당의 잦은 해산과 창당은 국민관심을 끌기 위한 흥행에도 실패했고 정치 불신만을 키워놓았다.

유력 후보들의 당 바꾸기 또는 탈당 후 입후보는 경쟁의 룰 자체를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당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이라는 정당정치의 기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당정치의 기반이 취약한데다 막강한 미디어 정치의 영향이 이를 부채질한 면도 없지 않다.

국민경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국민 참여가 시대의 조류라고는 하지만 국민경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정당정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당정치의 본질을 훼손하고 정당정치를 희화화할 수도 있다. 지역간의 대립만 무성하고 정치적 이념성향(보수 또는 진보)의 차이가 불분명한 가운데 치러지는 경선이 얼마나 명쾌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해 낼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회의도 있다.

문제는 대선 후이다.대선은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거쳐 비교적 높은 관심 속에 치러졌다.

그러나 총선은 대선 후 바로 이어져 치러진다.

대통령 선거 경선을 거치는 동안 총선 후보자 군이 크게 늘어난 데다 창당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당의 내부질서도 미처 정리되지 못하였거나 흔들려 있는 상태다.

단시일 내 후보자를 결정하고 충분한 검증기간을 거치지 않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정당도 바쁘고 선택하는 국민들도 곤혹스럽다.그

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국민들에게 정치적 선택기준을 제시한다는 헌법적 기능을 다하는 길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당한 후보자를 선정, 제시하는 것이다.

정당의 명예를 걸고 시대가 요구하고 국정 수행 능력이 있는 일꾼을 뽑아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정당의 이합집산이나 경선과정에서 파생된 파벌의 영향이나 타협에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

불합리한 경선 방식이나 미디어 선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기 영합선거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명확한 선택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적합한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정당정치 본래의 취지와 민주선거제도의 참 뜻에 부합하는 길이다.

이번 대선은 어수선한 가운데 치루어 졌다.

그러나 총선도 그래서는 안 된다.

정당정치를 복원한다는 시대적 사명감과 소명의식아래 공명정대한 공천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차원 높고 품격 있는 선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안재헌 / 충북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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