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理致)에서 지리(地理)가 법(法)을 따랐고 법도(法度)에서 법칙(法則)이 생겨났으니 이것이 천지자연(天地自然)에서의 법칙(法則)이요 이치(理致)다.

그리고 천지자연의 중심이 이치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의 중심은 마음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슨 이유로 선(善)을 추구해야 하고 왜 악(惡)을 구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천지의 법도(法度)가 올바른 것을 추구하고 천지의 지리(地理)가 온화한 곳에서 머물며 천지의 이치(理致)가 선(善)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사람은 천지간의 만물에서 그 이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천지간의 만물(萬物)은 모두가 생각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좋은 곳으로 찾아드는 마음을 일으킨다.

물론 인간의 생각과 마음처럼 복잡하고 세세하며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소(大小)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만물은 모두가 생각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과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이치가 천지간(天地間)의 어디에선가 존재를 하고 있다가 그 작용(作用)과 기능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사람도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만이 생각을 했고 마음을 지닌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다. 즉 천지자연에서는 생각과 감정이라는 기능을 지녔기 때문에 천지자연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간에게도 기존에 존재하던 이치가 머물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지간에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들이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인간의 독선이요 오만한 태도요 지극한 어리석음이 된다.

이러한 설정 위에서 볼 때 인간의 행위와 태도를 천지간의 어디에선가는 인간보다도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을 하고 정리하는 하늘이 있다고 가정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하늘은 하늘의 이치를 지키고 법도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항상 만물을 지켜보고 있으면서 잘못된 곳이 보이면 균형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을 환영하고 즐거워하겠지만 몸을 해치고 육신을 병들게 할 때에는 약물이나 그 외의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해 이것들을 벌하려 하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사람들이 사람의 생리에서 벗어나는 병균과 병마들을 퇴치하려는 것과 같이 하늘도 하늘의 이치에서 벗어나고 법도에서 어긋날 때에는 천도(天道)의 율법으로 하늘의 이치를 수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선(善)을 추구하고 행(行)하는 이유가 천도의 율법이 올바르기 때문이며, 하늘의 이치가 선(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은 사람의 중심이 되는 까닭이므로 이러한 마음과 생각이 천지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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