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진달래꽃을 참꽃이라고 불렀다. 봄이면 지천으로 피던 앞산에 참꽃을 따먹으러 다녔다. 입술이며 혓바닥까지 파르스름하게 물들 정도로 따먹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놀렸다.

참꽃 중에도 약간 흰색 기운이 돌던 창백한 기운의 참꽃은 먹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런 꽃을 애참꽃이라고 불렀다. 애참꽃은 아이들의 무덤가에 피는 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참꽃은 좋아했지만 애참꽃을 볼 때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생각나서 무섭고도 슬픈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 날에는 흰 카네이션을 달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어머니를 여의어 꽃을 달아드릴 수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모두가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날에 흰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꽃이었다. 5월이다. 초봄부터 지천으로 피던 꽃들의 향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카시아 나무에는 꽃이 주렁주렁 달리고, 이팝나무에는 꽃이 수북하게 얹혔다. 초봄의 여린 새순이 온 산을 녹음으로 꽉 채우고, 숲속 민들레며 애기똥풀이 노랑꽃을 피우며 숨은 듯 겸손하게 자리 잡고 있다.

5월이 돼도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물속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위한 분향소가 충북도청에 만들어 졌다.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 5월에 어울리지 않게 분향소를 가득 채운 흰 국화사이로 슬픔이 서려있다. 연일 원근 밤낮을 불문하고 찾아온 분향객의 얼굴에 하나같이 숙연함이 한 가득이다.

어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차가운 물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에게 죄스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살아있어서 미안하다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두가 침통해 하고 있다. 분향소 주변 곳곳에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오라는 노란 리본의 소망이 바람을 타고 쉼 없이 나부낀다.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며 노란색 리본을 나무에 달았다는 가족에게 찾아온 생환의 기적처럼, 오늘도 진도해역에서 들려 올 기적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모두에게 일어날 기적, 아니 단 한 명에게라도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노란색의 물결을 바라보며 어느 산속에서 창백하게 피던 애참꽃과 어머니가 계시지 않던 아이의 가슴에 달렸던 흰 카네이션이 중첩된다. 그래서 여느 해와 달리 5월에 피는 노란 꽃에 관심을 가져 본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 날을 지나 어버이 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까지 가까운 사람에게 감사함을 기억하는 계절이 5월이지 않던가.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계절이지만, 그렇지 못한 응달진 곳도 있음을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5월에 만나는 노란꽃을 보면 그 해 진도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아이들 모두가 자식이기 때문이다. 차디 찬 바다에 꽃잎을 떨군 아이들과, 어른들이 바르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5월이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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