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온 전체가 우울하다. 아직 피지도 못한 300명 가까운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장됐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세월호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방송에서 시키는 대로 객실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던 아이들.

이 어린 영혼들이 죽음에 직면해서 느꼈을 당혹감, 공포심 등을 생각하면 그 상황에 연루된 모든 어른들, 기관들에게 저절로 육두문자가 나온다.

위기상황에 처한 리더의 자질에는 감각과 리듬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불시에 터지는 돌발 사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장 감각과 순간순간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리듬감이 있어야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읽힌다.

우리나라의 지도층인사는 이와 같은 자질을 갖추기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지도층 인사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

각종 국가고시는 일단 누가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고시에 패스하면 그 다음 또 역시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를 굴린다. 우리 사회의 리더는 머리로 배우고 익힌 것만 써먹고, 시키는 대로 하는데 능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처분만을 기다린다.

위기란 규정이나 평상시의 규칙을 넘어선 상황이다.세월호 사태에서 이와 같은 관료적 리더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났다.

탁상에서 만든 안전대책 관련 매뉴얼은 넘치지만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겨진 것은 하나도 없다.

생존자가 있을 수 있는 초기 3일간 부모들의 초조함과 안타까움과는 전혀 다르게 아무 조치도 취해진 것이 없다.

윗선으로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관료적 리더의 현장감 부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례가 이번에도 발생했다.

관료: "장관님 오십니다". 유족: (분노와 짜증 섞인 투로) "어쩌라구?" 관료 개인에게 장관의 출현은 대단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관료사회의 위계(位階)의식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의 절박함과 애절함 앞에서 관료들의 위계의식은 무용지물이라는 걸 왜 관료적 리더들은 모를까? 이 사례를 보면서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 또 하나 떠오른다.

그건 사무실에서의 위계의식을 벗어던지고 현장의 절박함과 애절함에 동참하는 인간미 있는 공감능력이다.

현장에서의 감각과 리듬, 인간미 있는 공감능력, 이 모두는 삶의 현장에서 인간들과 섞이고 부대끼면서 키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미 없는 행정,

삶이 없는 정책이 나는 너무 싫다.

/김건호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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