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한미숙ㆍ녹십자중앙의원 원장ㆍ소아과전문의 시인

▲ 한미숙 원장
봄기운을 따라 잠에서 일찍 깨어나는 아침입니다.

할 일 없이 집안을 서성이다가 이윽고 결심을 하고,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켜고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가까운 무심천변으로 나갔습니다.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뚝방길 옆에서 들려오는 fm 음악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가볍게 몸을 풀어봅니다.

이제 곧 동쪽 우암산 멀리 해가 떠오르고 하늘엔 종달새가 우짖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 모두들 안녕하셨는지요?

스쳐지나가는,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들에게 인사라도 건네고픈 상쾌한 봄날 아침입니다.

늘 내 곁에서 말없이 흘러

간혹, 살다가 삶이 허무해지거나 깊은 슬픔, 혹은 아픔에 쌓여 허우적거릴 때도 무심천은 늘 내 곁에서 말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낮은 물결, 낮은 목소리로. 그 여울지는 물이랑과 은빛깔의 뒤척임 속으로 차마 부르고 싶었으나 부르지 못한 이름도, 차마 흘리고 싶었으나 흘리지 못한 눈물도 너울너울 흘려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세월의 강물처럼 내 가슴속 무심천은 어느덧 내나이만큼 깊어져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 청춘의 푸르른 봄 날, 선생님 한 분이 수업을 하시다 말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너희들이 내 나이 무렵이면 마이카 시대가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대청댐 수문이 열려 그 물이 무심천을 거쳐 미호천으로 흘러 들어가면 무심천은 파리의 센 강이나 다뉴브 강 못지않은 깊이의 강물로 흘러가리라고.

그러면 너희들은 자가용 승용차를 강둑에 세워두고 유람선을 타고 시내 야경을 바라보며 시 한편을 읊조리는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있으리라고.

그 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자고. 사춘기의 고뇌와 입시의 무거운 책가방을 동시에 등짐처럼 실어 나르던 그때, 그 말씀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대교를 건널 때마다 굽어보던 마르고 황량한 뚝방길에서 훗날에 흘러갈 푸른 강줄기를 꿈꾸어보기도 했지요.

뚝방길에서 미래 꿈꾸고

과연, 선생님 말씀처럼 마이카 시대는 와서 차들은 저마다 붕붕 거리며 다니는데 무심천은 아직 배를 띄울 정도로 깊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람선의 물길 대신 하상도로에는 오늘도 이른 출근을 서두르는 차들의 움직임만 바삐 오고 갑니다.

대신에 단장이 되고 수질도 보호되어 수달이 서식할 정도로 물이 맑아졌습니다. 한편으론 시민들의 놀이터 겸 헬스클럽장으로 점점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주 봄나들이 오렵니다

이제, 동물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강물이 풀리고 몸과 마음도 풀려 화사한 봄의 신호음이라도 들려올라치면 이렇게 가까운 무심천에 아이들의 손이라도 잡고 자주 봄나들이를 오렵니다.

비록 fm음악이지만 다정한 봄의 왈츠라도 들려올 듯한, 그 옛날 우리가 꿈꾸던 꿈속의 깊고 푸른 도나우강변 곁으로.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