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개월 전만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던 수목의 나뭇잎이 5월이 되면서 숲을 완전하게 채웠다. 5월의 산하가 신록으로 변해가던 한편으로 AI와 시름하며 지냈던 잔인한 현장도 있었다.

비난을 자초하면서까지 짐승들의 생명을 강제로 거둬들였던 시간들은 악몽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이제 겨우 추스르고 오월의 푸른 산을 바라보며 평화를 얻고자 하지만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다. 오월에는 사람들도 많이 떠나갔다.

세월호를 타고 하늘로 가버린 선생님과 아이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의사자들. 세월호 사건은 오월 내내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분향소 주변에 노란 리본은 아직도 바람에 나부끼지만 그들의 무사 귀환 소식은 없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던 사람들의 굳은 약속은 조금씩 옅어지는데, 바다를 보며 분노와 슬픔과 실망을 반복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느 세월에 옅어질까 싶다.

어느 버스터미널에서 생각지도 못한 화재가 발생해서 사람들을 잃었고, 어느 요양병원에서도 불이나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또 잃었다.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더 편히 모시고자 한 그곳이 무덤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더욱이 애통스러운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된 윤리가 이런 사고를 낳았다고 하니 어이없고 부끄럽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던 장모님을 어버이날에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그간 사무실 일을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준비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리셨으니 오월은 이런저런 슬픔으로 내내 얼룩졌다.

이제 이 세상에서 찾아 뵐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고아가 됐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기댈 사람 없으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무거워진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했는데 가족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컸다고 어린이날을 외면했고, 직장 일을 핑계로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았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도 애써 외면했다.

훅 하고 지나가버린 오월을 되돌아보니 그간 같은 시대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일에 게을렀다.

지인들에게는 이런저런 핑계로 만남을 회피하거나 용기 있게 찾아 나서지 않았고, 가까운 이웃에게 인사조차도 나누는 것에 참 인색했다. 가족에게는 쑥스럽고 말 주변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내지 못했으니 왕따 당하기를 스스로 택했다.

유월이 됐다. 유월은 60여 년 전, 전선의 포화 속에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쓸쓸한 주검을 기억하고 조국의 소중함을 기리고자 하는 호국의 계절이다.

더 이상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세상을 허무하게 떠나는 사람도 없고, 전쟁도 없는 평화를 기원하는 달이다. 유월부터는 앞으로 찾아오게 될 계절의 의미도 여유롭게 되돌아보고, 함께하는 이웃과 벗들과 가족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소통의 소중함을 실천해 볼까 한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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