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요즘 때 이른 무더위에다 2014 브라질 월드컵도 밤잠을 설치게 한다.

16강에 올라 세월호 참사 등 어려운 시기에 큰 희망을 기대했는데 우리 태극전사들은 안타깝게도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초라하게 끝냈다.

편견을 가지지 말고 객관적으로 축구중계를 보며 즐기라는 것으로 위안해본다.


문득 청주금강불교대학에서 공부한 자비희사(慈悲喜捨)와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종교를 떠나 우리는 바로보고(正見)수행하며 살아가는 내면적인 부분만으로 지탱할 수 없다.

반드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에 '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라는 쉽고도 어려운 화두(話頭)에 직면한다.

자리이타로 행동해야

현대사회에서 이기심의 만연은 오늘날의 사회가 봉착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다.

일단 '나'라고 집착한 이상 영원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결국 자기만의 이익 추구에 골몰하게 된다.

가급적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확보하려 하고 남의 것까지 빼앗으려 한다.

이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죄의식도 생긴다.

너무 이기적일 때 그냥 남이 아니고 적이 된다.

이기적인 나와 이기적인 적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적대적인 관계를 동반자적 관계로 바꿔야 한다.

무수히 다른 대상과 갈등하고 협상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며 제일 중요한 공통분모를 찾아내자.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사무량심이라고도 한다.

이 자비희사는 세상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 돋보기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자(慈)'는 '우정'이고, '사랑'이라는 뜻으로 남을 적으로 대하지 말고 벗으로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남이라고 여겨서 홀대하는 것이니, 바로 내 몸, 내 가족이라고 여기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비(悲)'는 슬픔이란 뜻으로 남을 대하는 첫 번째 자세다.

'슬플 悲'이지만 연민이고,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며, 남이 불이익을 당했을 때 자기 일처럼 슬퍼해주라는 것이다.

'희(喜)'는 기쁨이란 뜻으로, 남이 이익을 얻었을 때 역시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라는 것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사(捨)'는평정의 뜻으로, 그러한 자신의 우정을 상대방이 못 알아주거나 오해를 해도 섭섭해 하거나 화내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또한 기다릴 줄도 알고,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도 주고 있다.

깨끗하고 행복한 사회

공동체 전체와 남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기란 쉽지 않지만, 공존 공영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

흔히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도 우리에게 '자·비·희·사'의 마음가짐과 실천이 참으로 좋은 길이 된다.

항상 모든 것을 바로 보고, 안으로는 수행하고 밖으로는 매사에 자비로워야 한다.

이렇게 '자비희사'를 스스로 실천할 때, 혼탁하고 삭막한 사회는 깨끗하고 정겹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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