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1)은 한동안 목이 말라 있었다고 했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이후 한동안 대중에게 뚜렷이 각인될 만한 영화를 찍지 않고 보낸 시간이 4~5년 지났을 때였다. 공백을 제대로 채워야겠다는 욕구가 커진 정우성에게 1순위는 액션 영화였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야기와 구조를 재생산하는 액션영화들에 출연하기는 그랬어요. 그때 '신의 한수'를 만났죠."
'신의 한수'는 바둑판을 배경으로 한 복수극이다. 정우성은 형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살해 누명까지 쓰게 되면서 복수에 목숨을 거는 전직 프로 바둑기사 태석을 맡았다.

'신의 한수'가 개봉 첫날부터 외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를 눌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4일 오후 정우성을 서울 종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로봇군단을 무찌른 '신의 한수' 경쟁력은 무엇일까.
정우성은 "쉽게 볼 수 있는 오락액션 영화라는 점이 강점인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정우성의 힘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영화의 힘이다. 모든 배우는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배우·이야기·캐릭터의 삼합이 이뤄졌을 때 영화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내에서 액션을 가장 잘하는 배우 중 하나로 꼽히는 정우성은 이번 영화에서 장기를 잘 발휘했다.

덥수룩한 머리 아래 뿔테 안경, 바둑판 말고는 세상사에 어두웠던 무력한 프로 바둑기사였던 태석이 인고의 시간을 거쳐 선보이는 액션들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우성은 "'신의 한수'에 담을 만한 액션은 충분히 담았다고 생각한다. 액션할 때는 가혹하게 몰아가야 한다. 요즘 촬영기술이 좋아졌다고 컷을 나누면 촬영기술만 보이지, 진짜 땀 냄새가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우성은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간 탓에 냉동창고 액션 장면에서 결국 팔꿈치 뼈를 다쳤다.
이번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은 태석뿐 아니라 내기바둑계 '절대악'으로 군림하는 살수(이범수)와 내기바둑계 전설이었던 시각장애인 주님(안성기) 등 각 캐릭터의 조응이다.

정우성은 "안성기 선배님이랑 같이 연기하는 게 좋았다"면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주님이 맹기(盲棋·암흑바둑)를 두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약 13년 만에 호흡을 맞춘 이범수에 대해서는 "이범수 씨가 캐릭터에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좋았다. 제가 먼저 영화 일을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결같이 저를 존중해주셨다"고 밝혔다.
정우성은 화제를 모은 이시영과의 능숙한 키스신에 대해 "뭐, 많이 찍을 필요가 없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시나리오에는 둘 사이에 진한 강도의 베드신이 있었지만 촬영에서는 무산됐다고 한다.'


액션은 자신 있지만 바둑 문외한인 정우성이 어떻게 프로 바둑기사 역할을 해냈을까.

그는 촬영 당시 '착수'(바둑판에 돌을 놓다)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정우성은 "영화 들어가기 전 프로 9단을 모시고 배워보려고 했는데 바둑은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바둑은 대본에서 짜여 있는 수를 쫓아가면 되니 착수 연습을 프로 바둑기사처럼 보이도록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신의 한수'가 바둑을 소재로 했음에도 바둑보다는 액션이 강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우성은 이에 "'신의 한수'는 바둑 영화가 아니라 액션 영화다. (바둑을 보려면) 바둑 TV를 보셔야 한다"며 깔끔한 답을 내놓았다.

영화는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속편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정우성은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우선으로 후속편(출연)을 검토하겠다"면서 "저를 '7월의 남자'로 만들어 달라"고 강조했다.

정우성은 숨돌릴 틈도 없이 영화 '마담 뺑덕'에 이어 '나를 잊지 말아요' 촬영 일정으로 바쁜 모습이었다. 액션이 가미된 다른 작품도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데뷔 만 20년을 맞은 정우성은 "사극도 하고 싶다. 말도 잘 타고 칼도 잘 쓴다. 하하하"라면서 끝없는 작품 욕심을 보였다.

"제게는 촬영장이 가장 행복한 공간이고 가장 잘 놀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노는 방법을 몰랐는데 지금은 신나게 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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