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지인으로부터 매실을 첫 수확 했으니 좀 가져다 담가보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을 하고보니, 안 해 본 일이라 번거롭기도 하고 섣불리 가져다 망쳐버리면 어쩌나싶어 사양을 하고난 참이다.

[매실밭의 자두나무]


저녁때 남편에게서 매실 액을 담가보라는 말을 들은 데다 우연히 서울 큰언니로부터 또 전화를 받았다.

언니네 매실 밭에 좀 남겨 놨으니 시간되면 따가라는 것이다.

올해는 왜 그렇게 매실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가, 결국 매실을 담아야 할까보다.


다음날 새벽, 매실 밭을 들어서니 초여름 산자락에 머물던 싱그러운 바람이 그동안 눅진했던 기분을 맑혀준다.


수십 그루의 나무들 사이에 유독 실한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가 하나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온 남편은 다른 나무들은 누가 다 따 갔는지 남아 있는 게 없다고 한다.


한 나무라도 남겨 놓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신나게 따다 보니 좀 이상했다.


"이렇게 실한 것을 왜 안 따갔을까?"하니 "여러 나무라 빠뜨린 게지" 한다.


"그런데 뭔 매실이 살구처럼 크고 반들반들 하지?""원래 이렇게 클 건데 상품가치 더 있을 때 따다 팔아서 그런 거지" 남편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한다. "그런가?"


손에 안 닿는 부분까지 알뜰하게 다 따고 보니 꽤 많은 양이다.


거실에 죽 늘어놓고 지질한 것을 골라내며 꼭지를 다듬으려니 꾀가 난다.


'괜히 욕심 부리고 많이 따 왔나' 구시렁거려가며 꼭지를 따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근데, 무슨 매실이 암만 봐도 꼭 자두같이 생겼다"하니 그때서야 남편은 벌떡 일어나 다시보고 "그러네, 자두 맞네" 한다.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뭐냐, 그럼 이거 매실이 아니고 자두야? 나는 뚝눈이다 치고, 자기는 어떻게 매실인지 자두인지 구분을 못할 수가 있느냐" 며 버럭 짜증을 냈다.


남편도 어이가 없는지 "매실 밭에 자두가 있을지는 생각도 못했지" 한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더니, 어찌 둘 다 뻔히 아는 사실에 깜박 속았을까.


시퍼런 열매를 후둑후둑 딸 때부터 자두는 "나, 매실이 아니고 자두야" 수없이 외쳤을 테지만 우리부부는 야멸차게 따 냈던 것이다.


이 많은 자두들을 다 어쩐다? 버릴 수도 없고, 아까운 자두나무만 작살을 냈으니….


나는 약이 올라 속이 부글댔지만, 자두는 얼마나 더 놀라고 기가 막혔을까?


한창 단물로 성숙을 꿈꾸며 과육을 키우고 있다가 느닷없이 나무에서 떨려 났으니 말이다.

[편협한 사고 부른 편견]


매실 밭에 있는 것은 다 매실이겠거니 단정하고부터는 눈도, 귀도 멀고, 오직 다닥다닥 달려있는 열매만 보고 물욕이 앞섰던 게 분명하다.


속단이 불러온 생각의 오류가 비단 이 뿐이었겠는가?


편견과 오만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편협하고 사고의 폭을 제한해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거실 가득 널부러져 있는 자두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