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수필가)

일하다가 잠시 쉴 때면 눈에 띄는 대로 책을 집어 드는 습관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다.

잠깐씩 틈을 내어 읽어야 하니 손만 뻗으면 어디서건 책을 집을 수 있게 여기저기 책을 놔둔다. 대부분 산문류 책들인데 틈틈이 이어 읽기에는 이런 책이 그만이다.

이렇다 하게 재미를 느끼는 글을 만나지 못하고 있을 무렵 지인이 SNS를 통해 보내준 25부 연작소설을 모처럼 재미나게 읽었다. 여고 시절 친구끼리 돌려 보던 삼류 소설만큼이나 재미났다.

책상 밑에 숨겨놓고 눈을 살짝 밑으로 깔고 책을 넘기다가 행여 앞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책 종이 소리가 들릴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재미에 빠져 읽었듯이 그렇게 읽었다.

18살 여학생 주인공이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온갖 풍파를 헤치며 살아온 여정을 들판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개망초와 비교하며 엮어낸 소설이었다.

천대받는 잡초인 개망초만큼 모질게 살아온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다뤘지만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망초꽃향이 코끝을 스치는 듯하고 작가가 서둘러 소설을 끝낸 것이 여러 날 못내 아쉬웠다.

매일 내 스마트폰으로 무수히 많은 글이 전해진다. 개중에는 눈에 반짝 띄는 글도 있으나 대부분은 제목만 보고 삭제를 하기가 일쑤다. 좋은 글, 마음에 닿는 글, 재미있는 글 등 정말 글의 홍수다.

카톡, 마이피플, 페이스북, 밴드 등에 전해지는 글은 한결같이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긴 한데 다 읽기에는 왠지 버겁다.

더구나 글에 대한 감사의 예를 갖춰야 하는 답글도 부담되고 수시로 오는 글을 일일이 열어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삭제'보다 강도가 높은 '차단'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면서 보낸 이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읽을거리가 지천이니 우리는 글의 풍요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책의 판매량은 떨어지고 출판계는 무재고 출판으로 불황을 이겨 내려 한다지만 전 국민이 글과 마주하는 기회는 계속 늘고 있으니 지식이나 양식을 갖추기에는 최상의 시대다.

그러나 요즘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다. 추측이나 불안정한 확신을 나타내는 '같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채널을 갖춘 디지털 케이블 TV 방송의 대담 프로 출연자들 입에서도 '같다' 라는 불분명한 말이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주위 사람들도 '그렇다'하면 될 말도 '같다'는 말로 매듭을 지어 스스로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음을 표시 낸다. 지식의 중언부언인 시대를 살면서도 왜 이렇게 자신감을 잃었을까. 실현할 수 없는 지식은 흙으로 끓인 국이요, 종이로 만든 떡이라고 말하며 몸소 몸으로 체험하며 실천했던 조선 시대의 학자 서유구의 말을 기억해본다.

너나 할 것 없이 받은 과 교육으로 이론에는 밝으나 막상 현실에 닥치면 '토갱지병(土羹紙餠)'일 수밖에 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일까.

낫 놓고도 기억 자는 몰랐으나 우직함과 지혜로 한 생을 거뜬히 살아내던 현모가 만들어준 토장국과 쑥 개떡이 진정한 학문이고 지식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고 시절에 읽었던 상상 속의 막연한 토갱지병(土羹紙餠) 소설보다 살 만큼 살아본 중년에 읽은 소설은 그래서 더 기막히게 감칠맛이 났다.

/한옥자(수필가)
▲ 한옥자(수필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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