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김완하ㆍ문학가 · 한남대 문창과 교수

▲ 김완하ㆍ문학가 · 한남대 문창과 교수
최근 우리 극장가에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개봉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이미 수년 전에 세간에 대단한 관심을 끌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의 후속편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흥미를 갖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임감독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로 '천년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심이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한편 한편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기 위해 그것을 찍을 때마다 들여야 하는 공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기에 임감독이 제작한 영화가 100편째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 되고 남는다. 이점에서 한국 영화계가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쾌거이다.

이미 신문 지상에는 대서특필이 되었고, 씨네 21에서도 특집으로 다루어 임감독은 물론 주연으로 연기한 오정해, 조재현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다.

한국 영화사의 당대를 석권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게재된 인터뷰 기사 가운데서 나는 몇 가지 주목할 사항을 발견하여 기뻤다.

한 영화비평가의 임감독과의 인터뷰 가운데 "시나리오는 촬영하면서 써내려 간 것으로 아는데, 최종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은 언제인가요?" 라는 비평가의 질문에 임감독은 "그것은 영화가 끝나면서죠?" 라며 웃는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촬영이 끝나면서 완성되었다니! 시나리오란 본래 영화를 찍기 위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데 그 시나리오가 영화가 끝이 나면서 완성이 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끝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라. 영화의 제작과 무관한 시나리오란 존재할 수가 없다면, 그 시나리오는 한편의 영화가 촬영을 마치는 순간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를 다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때에서야 시나리오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가 완성될 때야 그 시나리오는 마침내 시나리오로써의 의미와 기능을 다 하고 한편의 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리라.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란 촛불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은 자신의 몸을 다 태워서 그 불빛으로 어둠을 밝혀 세계 속으로 사라져감으로써 그 촛불의 생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생이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이점에서 우리는 임권택 감독의 일생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감독의 생은 영화 속에서 비로소 완성이 되는 시나리오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임권택의 생은 영화와 함께 이어질 것이고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의 영화는 이어질 것이다. 그의 영화가 끝나는 순간은 바로 그의 생이 끝나는, 그의 생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일 것이다.

인터뷰에는 굳이 임감독에 대하여 '거장'이라는 표현을 멀리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너무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오정해는 한 마다 의미 있는 말을 남김으로써 임감독에 대한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도인은 하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하나로 다른 데까지 두루 통하는 사람" 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임권택 감독이라고! 아, 임권택 감독의 영화 100편은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놀라운 생의 집적, 요컨대 살아있는 등신불(等身佛)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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