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ㆍ서원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 후기 여성 성리학자이자 문인인 강정일당(1772~1832)은 20살에 가난한 선비 윤광연에게 시집가 극빈한 환경에서도 남편에게 학문을 권면하며 삯바느질로 뒷바라지하였다. 그녀 자신도 밤늦게까지 남편 곁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남편이 하는 공부를 함께 배웠다. 여성의 자아실현은 거의 꿈조차 꾸지 못하였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시대에 부녀자의 직분을 희생적으로 감내하면서도 평생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소 실천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그녀가 존경하였던 임윤지당(1721-1793)이 "남녀의 품성은 차이가 없고, 여성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에 평생 의지하며 옛 성현들의 글을 읽고, 자신의 심성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주로 학문과 심신수양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녀의 글에서도 당시의 여성문인들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은 드물다. 아는 분을 통해 처음 접했던 정일당의 시 "한 밤중에 앉아서 밤은 깊어 군중은 움직임을 쉬고, 텅 빈 정원에 달빛이 빛나네. 마음은 씻은 듯 맑아, 성정이 환히 드러나네夜坐 夜久群動息, 庭空晧月明. 方寸淸如洗, 豁然見性情"에서도 집안일을 끝내놓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홀로 깨어 인간 본연의 심성을 탐구하는 그녀의 군자다운 모습이 느껴진다. 부채에 새긴 글 "<부채> 손에 달이 있어 소매에 바람이 가득하다(扇 月在手 風滿袖)"라는 짧은 시구에서도 절제되고 단정한 그녀의 심성이 배어 있다.

그녀의 글씨도 "자획이 굳세고 바르며, 순수한 고풍이 있었고, 부드럽고 예쁘장한 자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녀의 글씨는 그녀의 성정을 고스란히 담았으니 어쩌면 강정일당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탐구하는 시대를 초월하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태도나 글 앞에서는 남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경건해지고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니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녀는 쪽지글로 남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 번은 극빈한 살림에 남편이 처남인 자기 동생을 후하게 대접하고, 시 아주버님은 제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한 일을 죄송하게 여겨, 시댁을 위하도록 간곡히 부탁한다. 시댁에 도리를 다하는 것을 마지못한 의무로 여기는 아내와 일단 결혼하면 시댁만을 봉사하는 것을 요구하는 남편이 현대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을 반성하여 정일당의 부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부자에게는 술 석 잔이나 권하면서, 늙고 가난한 손님에 대하여는 소홀이 대접한 일에 대하여 남편한테 스스로 반성하게끔 조언하였다는 데서, 있는 자를 대접하고 없는 자를 업신여기는 세태와 대비되는 올곧은 정신을 볼 수 있다. 또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과는 근엄한 태도와 정중한 예의로 상대방이 저절로 거리를 두도록 하면서도 남들이 비난하는 자라도 정성으로 대하며 자신이 할 도리를 하는 절제된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 사족을 달고 싶은 것이 있으니, 그의 남편, 윤광연의 높은 인격이다. 원래 그녀는 자기 글과 글씨를 숨기고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후에 당시 아녀자의 글을 문집으로 펴내는 것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음에도 남편이 전 재산을 들여 그녀의 유고를 모아 문집을 간행한 것이다. 스스로는 감추고자 했던 그녀의 귀한 삶과 학문의 자취가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아내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높일 줄 알았던 우리 시대에도 보기 드문 인품의 남편 덕분이다. 두 사람은 그래서 평생 서로를 공경하고 헤어지면서도 서로 그리워하는 벗이 될 수 있었나보다. 강정일당의 삶은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이지만 오늘의 우리의 삶에서도 본받을 만한 정신이 깃들여있다.



이영춘, <강정일당>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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