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법안 서명못해" … 내각구성 차질 예상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양심에 반하는 (정부조직) 법안에 서명할 수 없다"면서 정면으로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중인 새 정부의 조직 개편과 내각 구성 등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발표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가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며 강하게 비판, 신.구 권력이 정부조직법 개편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빚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느냐"면서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통일부의 외교부로의 통폐합, 여성가족부 폐지,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의 통폐합 등 인수위가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골자가 유지된 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법안에 서명 공포하는 일은 새 대통령에게 넘기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사실상 정부조직 개편에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새 정부 출범전 정부조직 개편이 난항을 겪고, 최악의 경우에는 장관없이 정부가 출범하는 기형적인 사태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헌법 53조는 현직 대통령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도 행사하지 않고 서명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할 경우 국회가 정부에 이송하는 날로부터 2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을 발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론상 대통령 취임식인 2월25일부터 역산해 20일 전인 내달 5일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취임식 당일 각료 명단을 발표할 수 있다.

하지만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은 통일부 존속을 주장하며 설 연휴 이후에 처리한다는 방침이어서 새 정부 출범전 조각이 완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인수위는 외교통일부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부처를 유보한 채 부분 조각을 하는 절충안으로 신당과 합의해 정부조직법을 조기에 통과시키거나 새 정부 직제에 맞게 각료를 미리 내정해 놓고 취임 직후 발표하는 방안 등 대책을 고민중인 것으로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떠나는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을 왜 이토록 완강히 가로막으려 하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국가지도자로서 제대로 된 인식을 갖췄다면 퇴임을 앞두고라도 자기성찰을 통해 국민 앞에 진지하게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히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혹시라도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게 아닌 지 의구심이 든다"며 회견의 정치적 배경을 따졌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퇴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이 차기 정부가 할일에 대해 시비를 걸며 이토록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뗑깡'(응석의 일본말) 쓰는 꼴"이라며 "갖가지 이유를 들어 신당 의원들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라고 했는데 이는 선동가의 모습과 같다"고 비난했다.

신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현직 대통령이 지적하고 걱정하는 게 많은 국민들이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면서 "대통령의 지적은 유의미하지만 그것을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국민이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방법론상의 문제를 완곡하게 지적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노 대통령이 지적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내용상 문제점에대해서는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국회에 맡겨 둘 일을 대통령이 나서서 거부권 등을 시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당 내에서는 노 대통령의 초강수가 구권력의 '새정부 발목잡기'로 비치면서 총선에서 자칫 신당이 여론의 역풍에 따른 유탄을 맞게 되지 않을까 곤혹스러워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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