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철학.가치 허무는데 동참못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민주적이고 신중한 토론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라며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가진 정부조직개편안 관련 기자회견문에서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부처 통폐합이 일반적인 정책의 문제라면 떠나는 대통령이 굳이 나설 것 없이 국회에서 결정해 주는 대로 서명 공포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그것이 참여정부가 공을 들여 만들고 가꾸어 온 철학과 가치를 허물고 부수는 것이라면, 여기에 서명하는 것은 그동안 참여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의 여성가족부 확대개편, 과학기술부의 부총리급 격상,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예산처의 경제부처 독립, 국가균형발전위 신설, 정보통신부의 성과 등의 의미를 거론하며 "이런 부처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재의 요구를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인수위안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대(大)부처주의에 대해 "대부처하는 나라에는 한 부처에 업무별로 여러 담당장관이 있고 그것도 모자라 많은 수의 정무직이 있어서, 정무직의 수가 부처 수의 여러 배가 되는 나라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반문한 뒤 "장관 혼자서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결국 나중에는 우리도 다시 그렇게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대통령은 "국회가 하는 것을 보고 말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국회에 맡겨둘 일이지 대통령이 왜 미리 나서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런데 통일부와 여성부 존치를 주장하고 있을 뿐, 다른 부분은 대체로 '부처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인수위 주장을 수용하면서 부분적 기능 조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작은 정부론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작정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한 뒤 "그러다가 참여정부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넘어왔을 때 그때 재의를 요구한다면 새 정부는 아무 준비도 없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그야말로 발목잡기를 했다고 저에게 온갖 비난을 다 퍼부을 것"이라며 "그래서 미리 예고를 한 것"이라며 국회 심의전 거부권 검토를 시사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인수위에 충고한다. 인수위는 법에서 정한 일만 하시기 바란다"고 전제한 뒤 "인수위가 부처 공무원들에게 현 정권이 한 정책의 평가를 요구하고, 새 정부의 정책을 입안하여 보고하라고 지시, 명령하는 바람에 현직 대통령은 이미 식물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며 "이것은 인수위의 권한 범위를 넘는 일이다. 그러나 어느 공무원이 장래의 인사권자에게 부당하다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 그것도 공무원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는 일은 새 정부 출범 후에 하시기 바란다. 아직 현직 대통령의 지휘를받아야 할 공무원에게 그런 말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야박한 일"이라며 "새 정부가 할 일은 새 정부에서 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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