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 안상윤 ㆍ 건양대 병원관리학 교수

▲ 안상윤 ㆍ 건양대 병원관리학 교수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이라는 말을 달고 살고 있다.

성장은 이제 우리에게 일종의 신앙이 되었다. 최근에는 성장이란 용어도 성에 차지 않는지 혁신이나 개혁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사람들이 입으로 내뱉는 말만큼 정신이나 행동으로 그것을 잘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 증가하는 질병과 자살이 그 증상이다. 끊임없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땅이 오염되고, 공기는 탁해지고, 먹을 수 있는 물도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인간의 용량을 초과하여 강요되고 있는 개혁과 혁신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탓에 옆에서 동료가 쓰러지고 죽는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성장은 분명히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주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환경의 파괴 못지 않게 갈수록 인간관계 환경도 피폐해지고 있다. 좋은 이웃은 없어지고 경쟁하는 이웃, 친구는 사라지고 오직 경쟁자만 남는 현실에 처하게 됐다.

타인과의 관계 파괴는 가족관계의 파괴로까지 전이되고 있다.

벌건 대낮부터 패륜이 저질러지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것도 가벼운 뉴스 아이템의 하나 정도로 치부되고 마는 세상이다.근본적인 치유를하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성장주의의 최면에걸려있기 때문이다. 성장이 인간관계에 개입하게 되면 그것은 경쟁상황을 만들어내고, 따뜻한 관계보다는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만들고 중시하는 것은 외면된다.

그렇다보니 뇌물을 이용하거나 권력자에게 잘 비비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끊임없는 부정과 부실의 저변에는 바로 성장주의 철학과 그것을 지탱하는 경쟁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서 성장, 혁신, 개혁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우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65세 이상의 노인, 15세 미만의 인구 및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 및 성장주의 부적응자 등을 제외하면 전체 인구 중 기껏해야 30% 정도가 성장을 이해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 70% 정도의 인구는 성장주의로부터 소외되어 있거나 성장의 과실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금의 문제는 성장의 그늘에 가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인구의 10% 에 해당하는 토지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조사 되고 있다.

50년 이상 성장을 부르짖어 왔지만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이들은 증오와 분노와 체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2세에 의해 저질러진 버지니아대학의 총격사건은 그와 같은 모순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중산층의 급격한 붕괴로 중립적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허심탄회한 웃음의 진원지도 사라졌다.

그 자리를 혁신과 개혁의 피로 증후군이 대신하고 있다.

이분법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칼날 같은 경쟁, 실업의 분노, 이민, 자살, 체념 등이 과거 웃음의 자리를 메우고있다.

경쟁도 좋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은더 중요하다. 정상적인 인간관계환경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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