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수·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학예연구관)

설은 한 해의 첫날이며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초(正初', '세수(歲首)'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한 해를 바르게 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다라는 뜻으로 '신일(愼日)' 또는 '달도'라고도 한다.

설 차례는 떡국이나 만두를 차려놓고 지내기 때문에 '떡국차례', '만두차례'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왜 설에는 떡국을 먹는 것일까. 신년 첫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1년을 아무 탈 없이 보내려는 뜻이다. 왜나하면 흰색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화시키는, 그야말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자연 그대로의 원초적이고 완벽한 색으로 시초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쌀에는 곡령(穀靈)이 깃들었다고 믿었으며, 흰쌀로 빚은 떡국은 순수하고 깨끗해 부정을 막고, 실타래처럼 뽑은 가래떡을 먹음으로써 수명이 길어지기를 염원했다.

요즈음에는 전화 한 통화면 콘도건 호텔이건 원하는 곳 어디든지 제물을 차려 줘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옛날에도 집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을 땐 현지에서 사당을 대신하는 의미로 지방을 붙이도록 된 감모여재도(사당도)를 걸어놓고 지내기도 했다.



자식은 다 같은 자식



명절만 되면 여자들은 뼈 빠지게 일만 한다고 불만이 이만 저만 아니다. 부인들은 명절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여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의학 용어까지 생겨났다. 제사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들리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집은 1년에 설, 추석 차례 두 번과 기제사 여섯 번 등 모두 여덟 번 제사를 지낸다. 양친이 다 돌아가신 후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다 같은 자식인데 굳이 맏형 혼자서 제사를 떠맡으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형제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막내인 제가 안을 냈으니 다음 차례를 저희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옆에서 집사람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자기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불평을 했지만, 기제사는 맏형 집에서, 명절 차례는 형제가 돌아가면서 지내기로 했다.

차례를 모셔 보니 제물 준비 등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생각과 제물 준비에 정성이 훨씬 각별해졌다. 또 번갈아 형제끼리 돌아가면서 차례를 지내다보니 형님들은 자연스럽게 동생 집에 갈 수 있어 좋고, 조카들도 큰집, 작은집에 오가고 해 가족간의 화목도 전보다 한결 두터워졌다.



재산처럼 제사도 나누자



이렇게 자식들 간에 돌아가면서 지내는 게 과연 우리의 풍속에 어긋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중기 때까지만 해도 오늘날처럼 장남 혼자 맡지 않고 아들 딸 구별 없이 모든 자녀들이 똑같이 나눠 지내는 소위 윤회봉사를 했다. 심지어는 외손봉사도 널리 시행됐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접어들어 성리학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오늘날처럼 장자가 제사를 주관하게 된 것이다.

이는 부계 중심의 종법 질서가 확고해지고, 재산도 균등상속에서 차등상속으로 바뀌면서 윤회봉사도 장남 단독봉사로 변화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상속법도 차등상속에서 아들 딸 구별없이 똑같이 나누는 균등상속으로 바뀌었으니, 제사도 장남에게만 지우지 말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자식끼리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를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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