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윤의상·변리사(한울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10여 년 전 청주로 이사 온 후로는 명절 때 고향 가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데, 고향 동네가 청주 근교인 청원군 북이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가경동 집에서 출발하면 30여 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므로, 명절 전후 교통 정보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청주로 이사 오기 전 수원에 살 때도 귀성길이 아무리 막혀야 4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아이들도 교통 정체를 견딜 만큼 컸었고 오며 가며 휴게소에 들려 우동이나 구운 감자를 먹는 재미에 지루하지는 않았었다.

명절 때 고향 다녀오기 가장 힘들고 고단했던 때는 인천시 남동구 문학동에 살 때다. 지금부터 15년 전 까지 인천에서 약 4년여를 살았었다. 그때가 시험에 막 합격했을 때였는데 승용차도 없어서 서울 남대문로에 있던 직장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그 시절에 고향에 내려가려고 버스를 타면 어린 아이들이 견디지를 못해서 기차를 이용하곤 했다. 예매일자에 서둘러 서울역에 가서 조치원까지 왕복 기차 편을 예매했는데, 좌석이 있으면 좋았고 입석이라도 있으면 다행 이였다.

고향으로 향하는 날은 직원들이 항상 알아봐서, 먼저 오늘 내려가시느냐고 내게 인사를 했다. 둘째 천기저귀와 갖가지 용품이 들은 가방과 옷가지 등을 담은 또 다른 가방 두 개를 메고 출근을 했으니 직원들이 먼저 '아 저 양반 시골로 내려가는 구나' 하고 알아보는 것이다. 차 시간에 맞춰 조금 일찍 소장님과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아내 역시 시간에 맞춰 큰 놈 손잡고 둘째를 업고 서울역으로 나오면, 콩나무 시루 같은 기차를 타고 조치원 역에서 내린다. 그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도착해서 기차 밖으로 내리면 객차 내부가 너무 더워서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조치원 역에서 다시 제천행 열차를 타고 증평역에서 내린 후 간단히 시장을 보고 택시를 타고 와 시골집에 도착하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땐 정말 고향 다녀오는 것이 힘들다는 말이 실감나던 때였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는 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때는 따로 있다. 그때는 내가 30여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고향이라기보다는 집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때는 설 명절이 아니고 아마 추석 전날 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은 토요일이여서 학교가 일찍 끝났다. 생각해 보니 내일은 추석이므로 시내버스가 혼잡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한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집까지 걷겠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충북고에서 육거리 까지만 걷기로 했었다. 그때는 충북고와 육거리 사이의 거리 정도는 통상 걸어 다니던 때였고, 육거리에서는 영운동 쪽에서 오는 증평 방향 버스가 더 많으니 버스 타기 수월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 이였다. 그런데 막상 육거리까지 도착하니 청주 시내를 관통하여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덕동까지 걸었다. 조금씩 조금씩 계속 걷다 보니 방고개, 수름재까지 걸었고, 그곳 근처 가게에서 버스비로 빵을 사 먹은 후 조금만 더 가면 수반인데 거기까지 걸어가 보자 하여 또 걸었다. 지금의 공군부대를 지나 원통리를 거쳐 내수까지 걸었다. 바쁠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었다. 내수에서 집까지는 4km정도 거리였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집까지 걷자고 생각했고, 집에 도착했더니 학교에서 4시간 반이 걸렸다. 명절 전날 2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온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시작하니 목표가 되었고, 한발 두 발 걷다보니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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