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무쇠솥 바닥에 담긴 과학의 원리

▲견고함ㆍ내구성의 대표 '무쇠솥'
솥은 취사용구의 하나로 밥을 짓거나 국 또는 물을 끊이는데 사용하는 생필품으로, 주로 무쇠로 만들어 썼으며, 꼭지가 달린 뚜껑을 덮었다.

견고함, 내구성 등을 갖추고 있는 무쇠솥 생산과정에는 선조의 슬기와 전통과학의 힘이 배어있다. 솥은 쇠로 만들기 때문에 쇠에 대한 이해와 경험 없이 양질의 솥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밥 한 사발에도 민감한 미감을 가진 우리민족의 입맛을 오늘날까지 지켜온 비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밥맛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밀의 열쇠는 바로 밥솥에 있다.

무쇠솥은 솥뚜겅 무게가 무거워 온도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며, 내부 압력이 높고, 또 높은 온도를 유지 시켜 주어 맛있는 밥이 된다.

무쇠솥뚜껑이 다른 재질로 만든 솥의 뚜껑에 비해 훨씬 무겁다. 요즈음 사용되는 압력밥솥은 잠그는 기능까지 있을 정도이다.

솥뚜껑이 무겁다는 것은 불로 가열 할 때 솥 안의 공기가 팽창됨과 아울러 이 수증기로 변하게 된다. 뚜껑이 가벼우면 수증기가 쉽게 빠져 나가지만 무거우면 덜 빠져나가게 되어 내부압력이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물의 끓는점이 올라가 밥이 100도 이상에서 지어져 낮은 온도에서보다 더 잘 익게 되기 때문에 밥맛이 좋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쇠솥은 바닥이 둥그렇기 때문에 열이 입체적으로 전해진다.

바닥의 두께가 부위별로 다른 점도 한몫 한다. 대부분의 가마솥은 불에 먼저 닿는 부분을 두껍게 하고 가장자리 부분을 얇게 만들어 열을 고르게 전달시킨다. 열전도율을 훌륭하게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무쇠솥의 원리를 현대과학과 접목하여 신기술로 나타난 것이 전기압력밥솥이다.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통가열식전기압력밥솥'. 한국인 입맛에 가장 맞는다는 '무쇠 가마솥에 지은 밥'에 버금가는 맛을 내고 있어 소비자들의 인기가 높다.

현대인이 애용하는 전기압력밥솥은 가마솥처럼 입체적으로 열을 가하기 위해 전자유도가열(induction heating) 방법을 적용했다.

밥솥 둘레 내부에 구리코일이 감겨 있는데 여기에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변화돼 무수한 2차전류(유도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 전류가 밥솥의 전기저항 때문에 뜨거운 열에너지로 전환된다. 사방에서 열이 전달되기 때문에 쌀이 구석구석 잘 익는다.

쌀이 잘 익으려면 대기압(1기압) 이상의 압력이 필요하다. 밥을 지을 때 솥 안의 공기와 수증기가 빠져나가 '김이 새면' 설익게 되기 때문이다.

전통 가마솥 뚜껑 무게는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는데 이러한 원리를 전기압력밥솥이 그대로 적용하였다.하지만 전기압력밥솥에 이런 무거운 장치를 얹을 수 없기 때문에 내솥과 뚜껑에 톱니바퀴 모양의 돌출부가 만들어져 있다.

뚜껑을 닫고 손잡이를 돌리면 톱니 바퀴들이 서로 맞물리게 돼 공기와 수증기가 빠져나갈 수 없다. 기에 압력 조절 장치를 달아 일정 압력(2기압) 이상이 되면 기체 배출구를 통해 내부 기체가 빠져나오도록 설계 되어있다.

첨단 과학으로 만들었다는 이들 밥솥 역시 무쇠솥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최근 유행한다는 통가열식 압력밥솥의 원리도 전통 무쇠솥의 원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과학슬기는 첨단과학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으로 응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