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일의 역사기행 - '인삼(人蔘)'편 ①

자연 속에서 자란 약초인 산삼은 '신비로운 풀'이라 하여 '신초(神草)' 또는 '선초(仙草)'라 불렸고, 또한 '사람의 건강을 좋게 한다'는 의미에서 토정(土精)·혈삼(血蔘)이라고도 했으며, 심지어는 그 모양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보니 '사람 모양을 한 뿌리'를 뜻하는 한자어인 '人蔘'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모두'·'모든 것'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인 '판(pan)'과 '의약'·'치료'를 뜻하는 '악소스(axos)'가 합쳐져 '만병통치약'이란 의미를 갖게 된 '파낙스(panax)'란 속명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긍정적 치료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적지 않은 합성의약품에 비해 인삼은 예로부터 '불로초'·'불사약' 등으로 알려지면서 몸을 보하는 자연 생약으로 우리 선조들에게 널리 애용돼왔다.

산삼은 '음지성 식물'이라 불릴 정도로 참나무·피나무·박달나무·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림과 잣나무·전나무·상수리나무·오가피나무·옻나무 등 침엽수림이 적정한 비율로 혼재돼 있어서 직사광선이 쪼이지 않고 서늘한 바람이 잘 통하는 깊은 산 속의 그늘진 언덕, 그리고 토양은 다습하면서도 부식된 잎이 많아 가볍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우리가 간혹 인삼밭을 지나갈 때 그늘막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인삼 또한 오가과의 산삼이 원조이기 때문이며, 인삼포에 물이 잘 빠지도록 도랑을 파두는 것 역시 습한 곳을 싫어하는 산삼의 생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삼 씨앗과 인삼 씨앗은 형태학적으로는 약간 달라서 전자는 조금 작고 누런 빛깔을 띠는 반면, 후자는 흰색을 띠고 약간 크지만 염색체 수는 둘 다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리하여 인삼이 오랜 순화 과정을 거치면 산삼의 잎·가지·줄기·꽃 등의 외형적 특성과 영양 성장이나 생식 성장 등 삼의 성장 습성도 산삼의 특성을 지니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실 현재와 같이 인삼을 본격적으로 재배하지 않던 고려시대 이전에는 '산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삼의 외형적 형체가 사람을 닮았다'고 하여 '인삼'이라고 했는데, 이 산삼이 중국 조공물로 헌납되고 궁중용으로 수요가 늘어나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인삼의 인위적 재배가 산중에서 은밀히 시행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대량 재배의 계기가 된 것이다.

산삼은 크게 천종(天種)과 지종(地種)·인종(人種)의 세 종류로 나뉘는데, 자연삼의 씨앗을 인가 주변, 즉 인삼포에서 기르면 인종의 모양을 하고 장뇌삼의 속성을 지니는데 반하여, 인삼 씨도 산새의 먹이가 된 후 배설물에 의해 산간에 뿌려지는 경우에는 5대를 지나며 순화 과정을 거치면 천종으로 변하기 때문에 씨앗 자체가 서로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산삼이 주변 환경에 따라 순응해가면서 환경이 제시하는 기준에 적절하게 생체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인삼 씨앗도 70~80여 년간의 긴 순화 과정을 거치면서 천종으로 적응해간다는 것이다.

인삼밭

참고로 '천종'은 수백 년의 오랜 세월 동안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란 자연 상태의 산삼으로서 원대 천종과 5대 이상의 자연 순화 과정을 거친 자연산삼을 말한다. 그리고 '지종'은 자연 상태에서 발아하여 자란 야생삼으로서 간단히 말하면 천종으로 순화 단계가 진행되고 있는 자연 야생삼 1대부터 4대까지의 산삼을 말하며, '인종'은 천종 씨앗이나 자연 야생삼의 씨앗을 채취하여 자연의 깊은 산림 속에서 자연 방임하여 키우는 산장뇌와 인가 주변 재배삼포에서 인위적으로 생육시키는 밭장뇌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구분법은 일반인들에게는 그 기준이 애매하여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다만 자연 상태에서 낙과되어 자란 경우에는 100여 년을 살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파종한 경우는 그 생존 연수를 20년 이상 넘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려인삼의 자생지역은 한반도의 33~43° 지역과 중국 만주의 43~48° 지역 및 러시아 연해주의 40~47° 지역 등 북위 33~48° 지역에만 국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후가 더운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에서 자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삼 재배지로는 전남 화순의 동복(同福) 지역이 최초로 산삼을 인공 재배하기 시작한 '인삼 재배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이미 1,500년대부터 지역의 토질을 조사하여 인삼 재배에 적절한 지역임을 확인하는 한편, 지역에서 채취한 야생삼의 품질이 우수함을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입증함으로써 당시 군수였던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이 직접 나서 인삼 재배 장려정책을 펼친 경북 풍기(豊基) 지역과 동복삼(同福蔘)이 개성상인들에 의해 도입됨으로써 나중에 유명한 '인삼 재배의 중심지'가 된 황해도 개성(開城)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약 300년 전부터 본격적인 인삼 재배를 시작하여 2006 세계인삼엑스포를 개최한 충남 금산(錦山) 지역도 유명 재배 산지이다.

한편, 최근 들어서는 충북 증평(曾坪) 지역이 인삼 재배지로 부상하고 있는데, 구릉지가 많고 수원이 풍부하며 배수가 양호한 사질 토양에다 인삼의 품질을 좌우하는 일교차가 적정하기 때문에 증평 인삼은 향이 좋고 사포닌 성분이 다른 지역의 인삼에 비해 우수하다고 한다.

수확된 인삼.

인삼의 종류를 살펴보면 가공방법에 따라 크게 수삼·백삼·태극삼·홍삼 등으로 나뉜다.

먼저 '수삼'은 경작지에서 수확한 가공하지 않은 인삼으로서 '건조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삼'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삼'은 수삼의 껍질을 벗겨 햇볕이나 열풍 등 일조건조식으로 말려 수분 함량을 14% 이하로 낮춘 인삼을 말하는데, 말린 형태에 따라 다시 직립 형태로 곧게 펴서 말린 '직삼'과 다리가 몸통 부분까지 절반 정도 구부러져 있는 '반곡삼', 다리는 물론 동체 일부도 둥글게 꼬부려서 말린 '곡삼'으로 나눌 수 있다.

'태극삼'은 수삼을 끓는 물에 찌거나 데쳐서 말린 인삼을 말한다.

끝으로 '홍삼'은 기존의 일조건조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수삼을 껍질째 증기나 다른 방법으로 쪄서 말리는 증숙 건조 방법으로 만든 인삼인데, 1,100년 경에 이르러 중국과의 인삼 교역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인삼의 수요량이 증가하자 새롭게 개발된 방식이다.

홍삼은 겉모양이나 속의 상태에 따라 다시 천삼·지삼·양삼·절삼으로 구분되며, 그 외에 별도로 미삼도 있는데, 예를 들면 천삼의 경우 '몸통은 균열과 흠집이 없고 다리는 1개 이상 잘 발달되어 있고 균열이 다리 길이의 1/3 이하이며, 길이가 몸통 길이의 3/4 이하, 그리고 조직은 내공이어야 한다. 내백의 직경이 0.5mm 이하인 것으로 길이가 10mm 이하이어야 하며, 색택은 담적갈색·담황갈색·다갈색 또는 농다갈색을 띤 것으로 균일하여야 하고 표피는 윤기있는 색택으로 황피여야 한다. 백피가 전체 표면적의 1/4 이하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3년차 이상의 인삼에서만 볼 수 있는 인삼열매.
이들을 하나씩 차례로 소개하면 '천삼'은 홍삼 중 품질이 가장 양호한 1등급의 특상품으로 내용 조직이 치밀하고 외형이 가장 좋은 인삼을 말하며, '지삼'은 천삼 다음의 2등급 상품으로, 내용 조직과 외형면에서 천삼에 비하여 약간 미약한 인삼이다.

'양삼'은 지삼 다음의 3등급 양호품으로서 내용 조직과 외형면에서 지삼에 비해서 약간 미약한 수준이고, '절삼'은 양삼 다음의 등외품으로 동체를 2등분하여 포장한 인삼이며, 끝으로 '미삼'은 홍삼 동체 이외에 대미·중미·세미 등으로 구분하여 선별한 양질의 인삼을 말한다.

인삼을 서구 사회에 최초로 소개한 사람은 네덜란드인 헨드리크 하멜(hendrick hamel : 1630~1692)이다. 그는 제주도 근해에서 배가 난파돼 1653년부터 1666년까지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돼 지낸 경험담을 흔히『하멜표류기』로 불리는『하멜보고서』로 남기는 가운데, 제2권인『조선왕국기』에서 "인삼은 조선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기록하였다.

1692년에는 역시 네덜란드인인 니콜라스 위트슨(nicolas witson)이 쓴『동북부 달탄인』에도 인삼이 등장한다.

한편, 중국의 동북부 달탄 지역의 지도작성을 도와주기 위해 중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 프랑스의 자르투(p. jartoux) 신부는 1714년 런던왕립학회에 보낸 편지에서 광대한 중국 대륙을 여행하는 동안 체험한 인삼의 효능에 대해 "작은 인삼 조각을 씹어 먹었더니 피로가 곧 가셨다."는 내용과 함께 그 모습을 자세히 그려 보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라피토(j. f. lafiteau)란 프랑스 신부갭달탄 인삼에 대한 기록」으로 소개된 이 내용을 접하고는 한 인디언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를 알아본 원주민의 인도로 몬트리올 근교의 산에서 찾냈는데, 이것이 '식물학의 아버지'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를 통해 '파낙스 퀸퀘폴리움'이란 학명을 얻게 된 북미산 인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인삼이 중국으로 수출되면서 중국의 인삼 거래상들이 캐나다로 몰려와 본격적인 인삼캐기 사업이 벌어지는데, 벼락부자를 노린 사냥꾼과 인디언들이 대거 나서면서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과 중국 간에도 인삼 교역이 활발해져 엄청난 양의 산삼 뿌리가 동양시장으로 실려 나가다가 19세기 말에 자취를 감추게 되자 미국 정부는 그 대안으로 인삼 재배를 권장하게 되었다.

박성일 저술가ㆍ문화해설가ㆍblog.naver.com/geoc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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