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광호 편집부국장

집집마다 영어(英語)때문에 난리다. 가뜩이나 영어가 대학 진학에 열쇠를 쥐고 있고, 취직할 때도 이게 모든 걸 좌지우지 하다시피 하고 있는 판에 새 정부가 영어몰입 교육을 내세워 이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또 다시 영어 광풍이 불고 있다.

천성적으로 아이교육에 열성을 쏟고있는 우리네 엄마들은 안달이 났다.

30대 후반 직장인 y씨는 "요즘 집안이 어수선하다"고 한다.

자고나면 떠들어대는 영어교육 강화니, 비중 확대니 하는 것 때문에 엄마와 아이가 "집에서는 영어로 하자"며 난데없이 집안의 공용어로 영어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밥 먹는 것에서부터 간식 투정, 놀이까지 갑자기 영어로 하자니 시키는 엄마나,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억지로 굴리는 아이나 모두 고역이고 이를 지켜보는 y씨 역시 "꼭 이래야 하나"라는 씁쓸함에 빠지곤한단다.

우리의 영어에 대한 투자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ceo information 578호'는 '영어경제학'이란 색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었다.

2004~2005년 중 전세계 토플(toefl) 응시인원 55만 4942명의 국가별 분포를 봤더니 한국인이 10만 2340명(18.5%)으로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어디 토플뿐인가. 한국인이 영어 배우기에 쏟아붓는 시간은 중학교~대학교까지 10년간 약 1만 5548시간으로 나왔다. 유치원 조기교육까지 감안하면 더욱 늘어난다.

시간이 많다보면 들어가는 돈도 많은 법. 영어를 배우려고 공교육을 제외한 학원 및 개인교습 등에 들어가는 연간 비용이 자그만치 15조 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조사 기준 당시 인구가 한국의 2.6배나 되는 이웃 일본의 영어 사교육비가 5조 원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입이 딱 벌어진다.

하기야 토익(toeic), 토플 응시비용만 연간 7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영어권 국가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귀빈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투자한 영어교육의 효과는 어떨까. 아쉽지만 투자비용을 건지지 못한다. 동아시아 국가의 경영환경 정보제공 전문업체인 '정치경제위험컨설팅(perc)'이 아시아 1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인이 영어 소통하는데 가장 힘든 나라로 한국이 지목됐다.

서울특별시가 4년 전인 2003년 말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영어로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거나 거의 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4.2%나 됐다고 한다.이러다보니 영어에 대한 회의(懷疑)가 새나오고 있다.

"영어 전문가를 키우면되지 굳이 모든 국민이 영어 하나 배우려고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영어가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냐"는 볼멘 소리가 적잖은 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아예 "차라리 전국민의 통역가화(化)를 시도하는 게 낫겠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속앓이는 아직 일부의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은 이런 한탄에 "모르는 소리 하지말라"며 "선진화, 세계화를 지향한다면서 어떻게 영어를 도외시한 채 그런 것들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고 가당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식인,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 나라의 역사는 제대로 모르면서 영어 하나만 달통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하늘의 별따기라는 취직도 영어만 입에 달고 살 정도면 쉽게 되는 지금의 사회 양상이 바람직한 건지 짚어 볼 필요는 있다. 영어몰입 교육도 이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으면 좋겠다.

/박광호 편집부국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