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일의 역사기행 - '인삼(人蔘)'편 ②

인삼은 전한(前漢) 원제(元帝 : 재위기간 b.c. 48~b.c. 33) 때 사유(史遊)가 쓴『급취장(急就章)』에 언급된 이래, 중국에서는 이미 한(漢)나라 때부터 명약으로 여겨진 사실이 여러 문헌에 엿보이고 있는데, 중국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리는 장중경(張仲景 : 142~220)이 196~200년에 걸쳐 저술한『상한론(傷寒論)』에 나오는 113편의 처방 가운데 인삼이 들어간 처방이 21편이나 되며, 또한 일찍이 신농 황제(神農 皇帝)가 수행한 생약의 효능 실험이 여러 세대에 걸쳐 구전되어 오던 것을 483~496년 동안에 도홍경(陶弘景 : 452~536)이 모아 집필한『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도 '최상의 생약'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인삼은 5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한방 의학사에서 어느 약재보다 탁월한 효능을 인정받음으로써 중국 대륙을 풍미하면서 가장 각광을 받은 '만병통치약'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고려인삼'

구 소련의 생약학자였던 브레크만(i. i. brekhman) 박사는 모든 병의 원인을 제공하는 각종 스트레스를 물리칠 수 있는 물질을 자연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 무려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시베리아 밀림 속에서 살면서 각종 식물을 탐색하고 연구한 진정한 과학자였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1957년「인삼의 약물학적 문제」라는 논문에서 "강장이란 생체가 질병·각종 스트레스 등으로 유해한 환경에 처했을 때 생체의 방어 능력을 비특이적으로 증가시켜주는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생체의 비특이적 저항력을 증대시키는 신물질'을 '어댑토겐(adaptogen : 우리말로는 '적응물질(適應物質)'이라고 번역함)'이라고 명명하면서 인삼의 유효 성분인 사포닌(saponin)이 어댑토겐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신체 내부에는 항상 일정한 평행을 유지하게 하는 생체 항상성을 갖고 있으며, 어댑토겐은 이와 같은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능력을 가진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인간의 신체가 가진 이 신비한 효과에 대해 '정상화 작용(正常化 作用)'을 제창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구전돼온 인삼의 약효를 과학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인삼 사포닌에 중추 흥분작용과 항 피로작용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진정작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의 다카기[고목(高木)]에 의해 인삼 사포닌에는 중추신경 진정작용과 흥분작용을 발휘하는 상반된 두 성분이 공존하며, 인삼의 만병통치적 성분은 바로 인삼 사포닌의 트리올계(triol 系)와 디올계(diol 系)의 상반되는 성분의 조화에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인삼은 인간의 '정상화 작용(正常化 作用)'을 촉진시키는 진정한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하게 된다.

오가피

이 사실은 인삼의 진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오가과에 속하는 오가피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3천만 년 전~6천 5백만 년 전에 해당하는 백악기의 퇴적층 화석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인삼 또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지구상에 생존하는 현화식물 중 가장 오래된 식물로서 여러 차례의 빙하시대를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삼은 첫째 극심한 기후이변에 대항하여 버틸 수 있는 저항력을 몸체의 요소에 응집시키거나, 둘째 생체 내에 형성된 저항 능력으로도 버티기 힘든 경우에는 땅 속 깊숙이 숨어서 휴면하고, 셋째로는 모든 식물들이 한창 성장하기 바쁜 7월의 성하 속에서도 조용히 잎의 초록 색깔을 엷게 바꾸면서 겨울 준비를 조기에 마치는 등의 대처 방법으로 이런 외부 환경적 스트레스에 대하여 방어 능력을 키워온 결과가 바로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포닌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 성분은 화학구조에 따라 크게 프로토파낙사디올(protopanaxadiol : pd)·프로토파낙사트리올(protopanaxatriol : pt)·올레아놀산의 3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식물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포닌은 올레아난계인 반면, 인삼사포닌은 타 식물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담마란 계열의 트리테르페노이드계로 알려져 있어 인삼의 사포닌 성분을 별도로 구별하기 위해 인삼 배당체란 의미에서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라 부르고 있다.

일반적인 사포닌 성분은 표면장력을 낮추므로 수용액 중에서 지속적으로 기포를 생성하고, 용혈작용 같은 독성을 유발하는데 반해, 진세노사이드는 혈액 중의 콜레스테롤과 결합하여 복합체를 형성하는 극성이 비교적 큰 고분자 화합물로서 용혈작용이 거의 없으면서도 약성이 온화하며, 또한 일반 사포닌에 비해 그 약리작용이 매우 뚜렷하고 다양한 생물 활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고려인삼에 함유된 30여 종의 진세노사이드 가운데 10여 종 이상의 개별 진세노사이드에 대한 약리작용이 밝혀졌는데, 특이한 것은 고려인삼에는 서로 유사 또는 상반되는 작용 성분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중추신경에 대해 pd계 사포닌의 대표적인 ginsenoside-rb₁은 억제 효과를, pt계 사포닌의 대표적인 ginsenoside-rg₁은 자극 효과를 보이지만 상호간의 길항작용(拮抗作用)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인삼에는 약리 성분이 수없이 많이 들어 있지만 필요한 성분만이 작용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서, 혈압약을 일례로 들면 양약은 혈압이 높거나 낮음에 따라 다른 성분의 약을 써야 하는데 반해 인삼은 높고 낮음을 구별할 필요 없이 아무나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하여 구 소련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외계에서 이용할 식품, 즉 우주식(宇宙食)으로 인삼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 주장은 최근 들어 다시 제기되고 있는데, 불가리아 과학 아카데미 생리연구소의 페트코프 박사와 서울대학교의 오진섭 교수는 고려인삼이 흥분과 진정의 양면적 작용을 선택적으로 조절하여 심리적 안정상태를 유지하여 준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이렇듯 인삼의 어댑토겐 설과 우리 연구진에 의해 허위 사실로 밝혀졌을 뿐 아니라, 고래로부터 인삼은 저혈압인 허증 치료에 많이 사용해왔으나, 특수한 처방에 따라 고혈압에도 사용해온 사실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는 "고려인삼은 열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쁘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미국에서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상술의 일환으로 퍼뜨린 이 마타도어를 우리나라의 일부 지식인들조차 여전히 사실로 믿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로 일본에서 생산되는 '죽절삼'

인삼은 우리나라의 '고려인삼(학명은 'panax ginseng c. a. meyer'로서 1843년 소련 식물학자 마이어(c. a. meyer)가 명명하였음)'과 미국·캐나다 쪽에서 생산되는 '화기삼(花旗蔘 : panax quinquefolium l.)', 중국의 윈난성과 광시성에서 생산되는 중국 고유 품종인 '삼칠삼(三七蔘 : 또는 '전칠삼(田七蔘 : panax notoginseng f. h. chen)'이라고도 함)', 일본에서 생산되는 '죽절삼(竹節蔘 : panax japonicus c. a. meyer)' 등으로 나뉘는데, 화기삼·삼칠삼·죽절삼 모두 고려인삼과는 다른 식물 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먼저 명칭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삼은 사람 모양과 유사할수록 더 값진 것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또한 연수가 오래될수록 사람의 모양과 더 유사해진다고 하는데, 고려인삼은 잎부터 뿌리까지의 전체 모양이 사람의 손·발·머리를 닮은 정도가 외국 삼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삼의 유효 성분인 사포닌과 관련해서도 외국 삼은 총 함량에 있어서는 고려인삼보다 높은 편이지만 사포닌 종류가 10~15종에 불과해 30여 종이나 되는 가장 풍부한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는 고려인삼에 비해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따라서 약리 작용에 있어서도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포닌의 조성 비율에 있어서도 고려인삼은 다른 종의 파낙스 속 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할 뿐만 아니라, 구조적 특징에 따라 디올계와 트리올계 및 올레아난계로 구분되는 사포닌의 약리작용은 제각기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어 다양한 의학적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끝으로 고려인삼은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파낙스란 속명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항암 효능 뿐만 아니라, 강장·강정·보혈작용에서도 탁월한 효능을 보이고 있어 전통적으로 최고품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그리하여 가격 또한 삼칠삼의 10배·화기삼의 3~4배에 달하고 있다.

예로부터 고려인삼의 약효를 유형화하여 크게 7가지 효능으로 간추린 내용을 일컬어 '칠효설(七效說)'이라고 하는데, 그 핵심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보기구탈(補氣救脫)'은 원기를 보하여 탈기된 상태를 회복시키는 작용을, '익혈부맥(益血復脈)'은 혈액을 보충시키고 맥절을 회복시키는 작용을, 그리고 '양심안신(養心安神)'은 심장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말한다.

넷째, '생진지갈(生津止渴)'은 진액을 생성하고 갈증을 멈추게 하는 작용이고, '건비지사(健脾止瀉)' 비장의 기능을 항진시키고 튼튼하게 하여 설사를 멈추게 하는 작용, '보폐정천(補肺定喘)'은 폐의 기능을 보강하여 호흡을 안정시키는 작용이며, 끝으로 '탁독합창(托毒合瘡)'은 체내의 독을 제거하고 종기를 삭이는 작용을 말한다.

박성일 저술가ㆍ문화해설가ㆍblog.naver.com/geoc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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