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황혜영ㆍ서원대 교수 교양학과

▲ [시론] 황혜영ㆍ서원대 교수 교양학과
처음은 무엇이든 서툴다.

하지만 처음이라 설레고 강렬하다. 충청일보에 첫 글을 전하는 내 마음도 첫 만남으로 설렌다.

우선 내가 서양의 학문을 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오히려 나를 키운 동양의 사상과 문화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이제 동서 양 문화를 함께 아울러 나의 체험과 사고의 둥지를 틀어가고 있기에, 기독교, 불교, 도교 등 언뜻 보기에 상이한 사상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어줍지 않은 생각들로 함께 엮어가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삶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내게 아버지께서 태양은 우리에게 고루 그 빛을 주지만 그 빛이 반짝하고 사라지느냐 영원히 지지 않고 발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 말씀은 내가 2년 전 청주로 이사 오기 한두 달 전에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가산불교문화원에서 지관스님의 함허(涵虛)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강독에서 들은 구절을 새삼 떠올려 주었다.

春色無高下花枝自短長(춘색무고하 화지자단장 : 봄기운은 높고 낮음이 없는데 나뭇가지에 장단이 있네).

햇살은 한결같지만 나뭇가지가 스스로 길고 짧음이 있듯이, 본래 인간의 본성은 차별이 없는데, 중생이 한 생각을 일으켜 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삶의 축복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충만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으며, 순간적일 수도 지속적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하게 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처음의 설레고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자신을 가다듬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신다.

함허는 위 인용문 조금 아래에 風和花織地雲淨月滿天(풍화화직지 운정월만천: 바람이 온화하니 꽃이 땅에 피어나고, 구름이 없으니 달이 허공에 가득하다) 라고 하여 온화한 바람에 꽃이 대지를 수놓고, 구름이 걷혀 깨끗할 때 달이 허공에 가득하듯이 우리의 마음이 온화하고 고요할 때 변함없이 영원한 본심을 본다고 한다.

청주 상당 교회의 3월 월삭 예배에서 담임목사가 설교하신 요한 복음 13장 말씀에서도 우리는 영원한 빛에 대한 또 다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자신의 외투를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는 제자들을 섬기듯이 그들의 발을 씻겨주신다.

거룩한 침묵속에서 예수는 사랑의 섬김을 몸소 보여주고는 유언과 같이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라 고 하신다.

바로 여기에 예수가 그의 사람들을 사랑하되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앞 구절이 암시하는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는 사랑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설교에서 나는 아하 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예수가 몸소 보여주신 섬김의 사랑은 우리가 다시 서로를 섬길 때 그 안에 녹아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받은 기적과 같은 축복과 사랑은 섬기는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나누어줄 때 그 빛이 영원히 발한다.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다짐하는 충청일보도, 나도,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의 빛은 다시 우리가 밖으로 되돌릴 때 지지 않고 멀리 퍼져나간다는 비밀스러운 축복의 메시지를 함께 읽고 실천할 수 있기를 오늘 우리 첫 만남의 설레는 순간에 다짐하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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