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똑딱거리는 데 1년, 괘종을 한번 치는 데 1백년, 뻐꾸기가 튀어나오는 데 1천년이 걸리는 1만년 시계가 있다. the CLOCK of the LONG NOW, [보다 긴 지금의 시계]다. 속도의 시대에 미래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 느린 것이 더 좋다는 느림의 지혜의 상징물이다.

디지털경영의 요체는 속도

디지털 경영은 인터넷으로 통칭되는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경영측면에서 도입한 개념이다. 기존 산업사회에 적용되던 경영방식을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디지털 경영의 요체는 변화창조와 속도다. 특히 속도가 유달리 강조된다. 도구는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디지털 경영 개념의 도입으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 척도도 달라졌다. 인터넷을 도구로 얼마만큼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느냐가 새로운 평가 잣대가 됐다. e-CEO가 등장한 것이다.

e-CEO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더 이상 과거의 성공률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디지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디지털 경영은 속도로 통한다.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에서 e-CEO들에게 디지털 신경망을 구축해 의사소통을 e-메일로 하고 모든 서류를 디지털로 바꾸라고 했다. 그리고 업무체제는 즉시체제(just-in-time)로 변화시키라고 강조했다. 바탕에는 속도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라는 전제가 깔려있다.속도는 이제 세계 경제의 지배적 특성이 됐다. 디지털 경영자들은 3개년 계획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집어던진다. 3개월짜리 계획에도 마뜩찮아 한다. 3주 계획안을 보고야 비로소 성에 찰만큼 속도에 집착한다.

그러나, 속도는 과연 선(善)인가. 아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경영의 화두가 있다면 그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속도는 지나치게 부분만 강조된 측면이 있다. 미국 그린리트센터 최고경영자인 래리 스피어스 박사의 말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하인처럼 일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봉사하는 지도력(servant-leadership)이 스피어스 박사의 지론이다. 스피어스 박사가 꼽는 CEO의 덕목에는 속도가 없다. 조직원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동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잠재적 능력을 믿으라는 , 사람에 관한 덕목들 뿐이다. 스피어스 박사의 말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속도 경영의 한 도구이듯 속도는 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세기가 더 빠른/더 싼(faster/cheaper)것을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더 느린/ 더 좋은(slower/better) 것이 새로운 메시지로 등장할 것이다. 최고 경영자들은 속도 못지않게 장기적 관점에서 속도와 무관한 , 느림의 지혜를 찾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다. 속도에 뒤쳐지면 소외되거나 곧 도태될 것처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속도는 속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맡기고 최고 경영자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동감을 표하고, 결정을 하면 된다. 천천히 가는 것은 속도를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천천히 가는 것이 더 어려워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갈 수 있는 사람이 자전거를 가장 잘 타는 사람이다.

(롱나우 재단은 지난 99년 [1만년 시계] 제작 작업의 첫번째 단계로 미국 네바다 동부 그레이트 베이슨 국립공원에 인접한 데저트 마운틴을 구입했다.www.longnow.org에 접속하면 느림의 지혜를 탐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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