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규용ㆍ농어민신문 사장ㆍ전 농림부 차관

▲서규용 농어민신문 사장ㆍ전 농림부 차관
농업은 우리 산업의 뿌리요 근본이다.

그러나 농업기반이 취약하여 농가 부채는 갈수록 늘어나고, 해외농산물 수입 허용으로 국내 농산물 가격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농업인은 문화, 교육비는 커녕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절망과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농업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는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문구는 이제 버려야 할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세계화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는 이유로 한·미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미국과 벌이고 있다.

우리 농업인은 왜 한·미 FTA협상을 결사반대하는가. 정부가 농업을 일반 산업 측면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농업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수급관리만 잘하면 되는데 왜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우리 농업과 농산물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농산물은 인간생존과 직결



공산품과 농산물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산품은 수요공급이 탄력적이지만, 농산물은 탄력적이지 못하다.

TV나 자동차 등 공산품은 사용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생존 문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음식은 매일 먹어야 산다.

반면 농산물은 값이 싸다고 음식 한 그릇 먹던 것을 두 그릇 먹고, 비싸다고 안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공산품은 기계를 더 설치하면 증산이 가능하지만,농산물은 아무 때나 생산할 수가 없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이 없다.

농산물은 신선함을 유지해야하고, 저장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공산품은 오래 저장했다가 팔아도 되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못해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농산물은 350만 농업인, 즉 불특정 다수가 생산에 참여해 생산조절이 어려워 가격등락을 반복하지만, 공산품은 특정 업체들이 생산에 관여하기 때문에 수급 관리가 쉽다.

이러한 농산물의 특성 때문에 농산물은 10% 과잉 생산되면 값이 10%가 아닌 40~50% 정도나 떨어져서 생산한 농업인이 고통을 받게 된다.

우리 농산물 생산비에는 토지자본 이자(즉 땅값이자)가 5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하여 땅값이 싼 미국에서 토지를 수입해와서 우리 농산물을 생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같은 우리 농업의 어려움 때문에 중국산 보다 우리 쌀은 5배, 고추는 8배, 마늘은 9배 이상 비싸 농업인을 고통 받게 하고 있다.

농촌의 현실을 직시해야



뿐만 아니다. 우리 농업인은 60~70년대에는 공산품 수출을 위해 저농산물 가격정책을 받아들여야 했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는 수출 확대를 위해 농산물 개방을 수용해야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미FTA로 쌀과 한우의 관세철폐 내용을 담은 협상을 요구받고 있어 농업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에 있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나 도시 소비자들이 우리농업, 농촌을 깊이 인식하고 이해를 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 협상타결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은 주법이 연방법보다 우선한 미국과,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우선한 한국이 협상하는 것이기에 철갑옷을 입은 병사와 비무장 병사가 싸우는 격이다. 우리농업,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농업인들이 결사반대하는 이유를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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