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7년 3월 13일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은 충북이 낳은 위대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런데 정작 충북인들은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다행히 최근 단재문화예술제전위원회에서 단재의 성장과 일제 강점기 그의 언론 활동을 자세히 담은 책을 발간하여 보급한다고 한다.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단재는 일제시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했다. 선생이 황성신문 재직 당시인 1905년 장지연이 쓴 그 유명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게재돼 신문이 무기한 정간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대한매일신보로 자리를 옮겨 국민을 계도하는 논설을 계속 썼다.

단재문예위가 출간한 이책은 도록(圖錄) 형식으로 꾸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특히 단재 선생이 황성신문 주필로 활동하며 작성한 논설 170여편을 원문 사진과 함께 수록해 그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재문예위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1905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된 뒤 대한매일신보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돼 있지만 1907년 9월에도 황성신문 주필로 활동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논설이 발견돼 이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단재 논설 중 1907년 2월 25일 황성신문 주필 당시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단연보국채(斷烟報國債)는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자"는 것으로 논설은 무기명으로 작성됐지만 단재 특유의 서사시적인 문체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선생의 가치관과 좌우명을 담은 단재잠(丹齋箴)을 비롯해 칠언율시 등 단재가 남긴 시문도 이 책에 수록하고 있다.

1911년 선생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하면서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와 선생 주변 인물들에 대한 소개도 사진과 함께 실어 단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책을 출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재 선생의 철학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후손들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아는 것은 단지 우리 고장 출신의 언론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한국 언론사에 끼친 공적이 너무 지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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