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의 노래 - 임홍재 詩

▲박원희 시인
군대를 다녀온 해라고 생각 된다.

대학 후배가 “저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하고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술상을 받아 놓고 그 후배와 술을 마시며 이 예기 저 예기를 하였다.

그러던 중 후배는 몇 권 꼽혀있지 않은 책꽂이에 책들을 보면서 “형님은 저기 있는 시집 중에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라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불콰하게 취해 있던 나는 거침없이 “임홍재의 ‘청보리의 노러”라고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리 좋아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또 거침없이 “소시민의 저항성---”외에도 여러 가지 말들을 늘어놓은 기억이 난다.

그 후배는 나에게서 그 시집을 가져갔고, 며 칠 후 군대에 갔기 때문에 그 시집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제대하고 온 후배에게 그 시집을 물으니 후배는 그 시집을 가져가지도 않았고 있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시집은 이미 절판된 상태였고 그 누구도 젊은 날에 작고한 이 시인의 시집을 다시 만들지도 않았다.

어느 날 대전의 백화점에 갔다. 묵은 책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에 이 시집이 딱 한 권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기분으로 이 책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아이처럼 책을 들고 와서 읽는데 그렇게 감동으로 와서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 책은 다시 서가를 장식하는 죽은 활자를 가지고 몇 년을 더 버티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나의 사업이 부도가 난 후유증으로 밀려난 들판에서 후두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말을 하지 못한 채 청주의 변두리 평촌 들판을 배회하고 다녔다.

일이라고는 걷는 일이 전부였던 때 나는 임홍재 시집 ‘청보리의 노러를 다시 보았다.

그 때 나는 임홍재 시인의 진정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학이 무엇인가? 서정성의 부재가 안고 온 현재의 시적현실에서 시란 가능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물음에 임홍재 시인은 ‘기록’이라는 말을 그 시집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활자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은 기록성에 있다.

그 방법이 역사가가 쓰면 역사적 기록이고, 시로 쓰면 시적 기록이 되고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의 흔적이든 역사의 흔적이든 풍경이든 모두가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어떤 물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나도 아직은 실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어눌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 후배가 시집을 가져갔든 가져가지 않았든 그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어디론가 잠적해 버린 그 후배의 목소리를 이 시집의 내용처럼 듣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청보리를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돋아나는/청보리를 밟아라

죽지 부러진 비둘기가/빼앗긴 魂을 부르며 울고 가는/누구나 牧民心書를 엿듣지 않는 밤./청보리만 살아서 방을 지키는가.

어둠 속에서 다시 돋는가.<청보리의 노래1 중 마지막 6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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