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삼국시대 합금술 현대 기술과 유사

▲백제 천안 화성리활두대도
금속상감이란 철, 구리, 은 등으로 만든 기물(器物)의 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홈을 파고 그 속에 다른 금속인 금·은·동 등의 금속 실을 박아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을 말한다.

평양의 낙랑지역 출토품 외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상감유물은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하사(下賜)한 일본 나라현[奈良縣] 텐리시[天理市] 이소가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 되어있는 철제 칠지도(七支刀)로, 칼날의 양쪽면에 모두 61자의 금상감 명문이 있는데, 동진(東晋)의 연호(年號)인 태화(泰和)4년은 369년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유물이자 세계의 보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조(forging iron, 鍛造)기술과 담금질기법으로 만든 칼날위에 상감기법으로 글자를 넣은 칠지도는 강철을 100번씩이나 열처리하여 단조한 특수강이며 상감기술은 그 당대에 있어서 하이테크이자 선진기술이었다.

칠지도가 일본에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상감유물은 백제의 유물인 천안 화성리유적의 은상감당초문고리자루큰칼(銀象嵌唐草文環頭大刀)로 4세기말에서 5세기초의 것으로 보고 있다.

무늬는 봉황ㆍ용ㆍ별 등

철 主재질 유리도 발견



백제에서 이러한 하이테크기술이 개발된 시기는 백제 최대의 전성기인 근초고왕대(346~375년)로 고리자루큰칼, 활과 화살 등의 우수한 무기를 앞세워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전개하여 고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고, 요서지방(遼西地方)으로 진출하여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한 결과 군사?상업의 요충지를 확보하였으며, 일본열도로도 활발히 진출하였다. 이로서 요서지역과 한반도, 일본을 잇는 고대 상업망을 형성하였으며 백제를 그 중심에 둘 수 있었다.

위의 유물외에 천안 용원리, 전 청주 신봉동, 남원 월산리, 창령 교동, 가야의 고령 지산동, 창원 도계동, 합천 옥전, 신라의 경주 호우총, 함안 도항리, 의성 대리 등 고분에서 나온 철제 금은상감고리자루칼과 띠고리 등의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에 금속상감기술이 상당히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금속상감에 이용된 무늬는 글자, 선, 봉황, 용, 귀갑, 별무늬 등 여러 가지 모습이다.

상감기술이 표현되는 기물의 재질은 주로 철이며 이외에 유리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상감에 사용한 재질은 금, 은, 동 과 그 합금을 사용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특히 금과 은을 합금한 현재의 14K(karat)와 같은 함량으로 상감에 사용한 호암미술관소장 철제파상문금상감대도(鐵製波狀文金象嵌大刀)는, 오늘날 금속상감에 종사하는 이들 조차 그 기술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상감의 단면은 V자형으로 관찰되며, 상감의 폭은 약 0.4~1.0 ㎜이고 깊이는 약 0.2㎜정도이다.

특히 상감의 단면이 V자형인 점은 현재의 금속상감에 종사하는 기능보유자들의 상감 제작기술과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렇듯 철과 비철금속에 각기 다른 방식의 제작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금속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것에 알맞게 제작기법을 발달 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기술의 발견과 발전은 보다 낳은 기술의 개발을 가져와 세계의 자랑거리인 상감청자를 탄생시켰고, 이어 조선시대의 목상감과 가죽상감으로 응용 발전되어 상감기술이 제자리에 멈추지 않고 첨단기술로서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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