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환 시인과 한 권의 책
▲류정환 시인 |
1992년에 개봉됐던 영화 ‘Far and Away’를 보면 서부로 몰려든 백인들에게 땅을 분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총소리에 따라 출발선을 떠난 참가자들이 말을 타고 달려가서 먼저 깃발을 꽂으면 땅을 차지하게 되는 식인데, 그 아름답고 기름진 땅의 주인은 원래 인디언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한미 FTA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그 결과와 파장을 점치며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거니와, 예나 지금이나 백인들은 늘 그렇게 막무가내 식이다.
"백인들의 생떼에 응답하는 추장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ㆍ류시화ㆍ김영사 |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린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수콰미쉬 족과 두와미쉬 족 추장 시애틀의 유명한 연설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들의 화법은 폭포같이 웅장하고 시처럼 영롱하면서도 구체적이다. 왜 땅을 팔 수 없는지, 왜 종교를 바꿀 이유가 없는지에 대해 차분하고도 명료하게 얘기했으나 백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인디언들은 끝내 땅을 팔지 않았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죽거나 척박한 보호구역에 수용되어 생을 마감하는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수천 년 역사 속에 풍요롭고 다채로웠던 인디언 문화는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땅에 들어온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켜진 것은 단 하나, 그들은 우리 땅을 먹는다고 장담했고 정말 우리 땅을 먹어치웠다.”― 수우족 추장 붉은 구름의 일갈은 저간의 사정을 말해주는 울부짖음 같은 것이다.
‘나는 왜……’는 금서가 되어야 할 책이다. 그들의 연설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 특히 물질문명을 좇아 달음박질하는 인간들에게 전하는 경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건대, 금서가 될 수 없다면, 내용으로 보나 무려 10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보나 손닿는 곳에 두고 때때로 펼쳐 보는 경전이 되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