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진섭ㆍ청주시 복지환경국장

▲최진섭 국장
한달 보름 전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入春)이 지나고 얼마 전 24절기의 한 절기로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지났다.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세월을 일컫는 말로서 여조과목(如鳥過目)이란 고사가 있다.

4남매의 막내로 자란 나는 어머님의 마흔둥이로서 끝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엔 옛말 그대로 골목대장으로서의 개구쟁이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음은 물론 달리기를 비롯한 기계체조, 맨손체조, 덤블링 등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을정도여서 매년 개최되는 가을 운동회 날이면 친구들의 부러움은 물론 동네 어른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이때가 되면 어머님께서는 평소 속을 썩혀드렸던 사고뭉치 막내 개구쟁이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시고 가을 운동회 행사가이미 지난 며칠 동안 내내 운동회 날 받은상장과 상품 이야기로 온 동네 마실 방을다니시면서 왼 종일을 막둥이 자랑으로 기분 좋아 하셨고 머리를 손이 닳도록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이 삼삼하게 떠오르곤 한다.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하듯이 인간이란생명체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미지의 세계로뛰쳐나오는 것이 오죽이나 불안하였으면 세상이라는 공간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목이터 저라 고함을 쳤을까마는 이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동안 내 주변의 울타리로부터 하나 둘씩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씩 자식들을떼어 내면서 거산처럼 웅장했던 어머님의그늘 속에서 과연 얼마 많큼의 그림자로 애비의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어버이를 사모하는 그리운 정이란 뜻으로망운지정(望雲之情)이란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몇 번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던가.

이토록 서론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바로이때의 어머님에 대한 불효를 돌아가신 후에도 차마 고백 드리지 못한 죄인으로서 바로 사죄드리고자 한다.

옛날 시골 아이들이 다 그러했듯이 10여리정도의 눈 덮인 통학 길을 다니다 보면 검은 운동화는 물론 양말까지 꽁꽁 얼어붙어발갛게 부어오른 발을 동동 구를 때면 어머님께서는 젖은 운동화와 양말을 벗기시고두 발을 젖무덤에 넣어 녹여 주시곤 하셨다.

또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선생님들의 추천과 자아를 모르는 자신감에도취되어 모 일류대학교 공대를 지망 했다가 보기 좋게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새벽 우물가에서 목욕재개하시고 아들의 합격을 빌고 계셨던 성스러운 어머님의 모습을 훔쳐보고도 못 본체한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이제와서 천백배의 사죄를 드린들 나이가 들면들수록 후회스런 마음만 들 뿐이다.

그토록 평생을 자식사랑에 헌신적으로일관해 오셨음에도 당신께서 이 세상을 등지시고 돌아가실 때에도 당신께서 생존 시손수 마련하셨던 산소자리와 수의 그리고돌아가실 때 소요되는 상조 경비 등 모든것을 준비하시고 자식들에게 고통 한번 주시지 않고 너무도 갑작스럽게 조용히 가셨기에, 또한 운명시간마저도 상면할 기회를 주시지 않았기에 가슴이 며질 따름이다.

눈 녹은 부끄러운 설산에는 물오른 가지마다 힘찬 푸르름이 기지개를 치는 입춘 무렵, 20여년 전 이 무렵에 평생을 자식사랑으로만 헌신하시다 홀로 가신 어머님을 그리면서 지천명의 희끗거리는 머리칼에 걸맞지 않게 꿈 속에서나마 어머님께 어리광을털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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