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황혜영 ㆍ 서원대 교수 교양학과

▲<빛의 제국 L empire des lumieres> (마그리트)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대규모 회고전이 4월 15일까지 연장 전시되고 있다.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집요함>에 등장하는 흐물흐물해져 테이블 아래로 축 늘어진 시계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는 달리와도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로 초현실적인 비전을 창조해온 벨기에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화가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을 소재로 다룬 미학서적이나 그의 작품의 제목을 가지고 만든 국내작가의 소설로 우리나라에도 그의 이름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많은 경우 달리의 그림 속의 늘어진 시계처럼 환상적으로 변형된 사물로 꿈속과 같이 초현실적인 세계를 만든다기보다 그 자체로는 익숙한 모습의 사물들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이미지를 만든다.

<빛의 제국>(이번 회고전에 출품되지는 않았다)은 1948년부터 같은 제목의 여러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1954년에 그린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마그리트적인 초현실세계의 정수를 잘 보여주면서도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그림은 아담한 집과 호수, 그리고 집 주변을 둘러싼 나무를 담은 언뜻 봐서는 별다른 시선도 끌 것 같지 않은 평범한 그림이다. 어둠에 잠긴 집의 창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현관 앞 가로등 불빛이 집 앞 호수 위의 잔잔한 물결 위에 은은히 흔들리고 있다. 집 주위를 감싸며 훌쩍 솟은 나무들의 아름다운 자태도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나무 위의 하늘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앗!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어둠에 잠긴 집과 나무 위로 흰 구름이 둥실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집과 호수는 분명 한 밤중인데 하늘은 화창한 낮이다. 어둠 속의 집과 나무, 그리고 파란 하늘 각각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다. 하지만 파란 하늘 아래 어둠에 잠긴 ‘빛의 제국’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 그림은 초현실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그림이 정말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일까?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을 때 우리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바라본 푸른 하늘은 어쩌면 어둠이 깔린 그 자리에 여전히 자신을 드러나지 않고 어둠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불빛은 어둠 속에서 드러나고,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진정한 예술가의 눈에는 낮과 밤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어둠을,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둠이 내린 집 위의 푸른 하늘과 같이 말이 안 되어 보이는 이 풍경은 말없이 우리에게 빛과 어둠이 어우러진 하나의 세계를 납득하게 설득하고 있다.

제목도 시적인 <빛의 제국>의 어둠이 깔린 세상 위의 푸르른 하늘을 들여다보노라면 우리 삶의 숨겨진 소중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은 우리가 어둡고 힘든 삶의 순간에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 희망을 간직하고, 행운이 넘칠수록 그 아래 드리워진 짙은 어둠을 응시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현명한 내면의 시선을 갖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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