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비례와 균형美의 극치



탑은 탑파(塔婆)를 줄인 말로 원래는 범어(梵語, Sanskrit)의 스투파(Stupa) 또는 파리어(巴梨語, Pali)의 투파(Thup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탑은 그 평면이 사각, 팔각 등으로 다양하고, 건축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청동탑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단단하고 화재에 잘 견디고 내구성이 있는 화강암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전탑이 위주가 되는 중국이나 목탑이 위주가 되는 일본과 달리 석탑이 크게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4세기 후반부터 약 200년 동안에는 목탑 건립시기였고, 오랜 목탑의 건조에서 쌓여진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석탑을 만들어 내었다.

7세기 초반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대표적이며, 당시에 유행하던 목탑을 본뜬 것이다.

이런 석탑에는 조상들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엿볼 수 있는데, 당시의 건축기술자들은 탑의 구조역학적인 안전성을 갖는 구조기술과 함께 탑의 조형성을 높이기 위한 정연한 비례구성수법을 창조하였다.

백제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은 정돈된 형태와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이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하며 격조 높은 기풍을 풍기고 있어 우리 건축기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흥미있는 것은 정림사5층석탑의 비례구성과 일본 법륭사 5층목탑의 구성원칙이 서로 비슷하게 계측된다는 점이다.

정림사 탑의 기본단위는 바닥기단너비의 ½을 취하고 있는데, 일본의 법륭사 탑 역시 ½로 설정하고 있다.

이 것은 결국 같은 단위의 척도기준을 갖고 백제와 같은 수법으로 일본법륭사 탑을 만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탑구성에서 기본단위의 적용, 등차수렬에 의한 치수설정방법은 자연적으로 탑 구성단위들의 관계에서 정수비를 갖게 하며, 조형적 의미에서 탑의 구성기술은 탑이 수직상에서 안전하면서도 보기 좋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체감기술의 적용이 매우 중요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탑의 구조적 안정성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삼국의 석탑들은 서로 그 양식을 달리해서 출발했지만 삼국통일과 함께 새로운 계기를 맞아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만든 불국사 석가탑에서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석탑의 정형은 그 뒤 전시대를 통하여 오랫동안 지켜진 형식으로, 한국 석탑의 주류이자 특색이 되었다.

삼국의 기술을 이어받은 고려시기의 돌탑들은 정연한 기하학적원리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그것은 기단과 지붕너비를 밑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려보면 그 꼭지점이 1층 탑신 중심에 놓인다.

이것이 사람이 탑을 바라볼 때의 수평투시점이다. 1층 탑신의 한변 너비를 기준크기로 설정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옥개석(지붕돌) 폭을 밑면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리면 다음층의 옥개석 중심에 꼭지점이 놓인다.

이 때 그려지는 삼각형들은 정삼각형으로서 같은 비례를 가지고 그 형태가 축소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시기의 탑 구성기술에서는 앞선 시기의 건축기술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그 시대의 고유한 특색을 살려 보다 발전 시켰으며, 조선시기 또한 이와 같았다.

이렇듯이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탑 건축물은 과학성이 돋보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탑은 천년 이상 이 땅을 지켜온 우리나라 건축물을 대표하는 과학문화유산 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으로서 자리 매김 되고 있다.

<사진설명= 정림사 오층석탑>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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