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익 칼럼] 본지 객원논설위원ㆍ시인 주성대 강사

봄의 전령이라면 곤충으로는 나비요 새로는 제비를 꼽는다. 제비 얘기가 나왔으니 망정이지만, 오늘 아침에 李 植(1584~1647.선조 17~인조 25)이 지은 갓 돌아온 제비(新燕)라는 한시(漢詩) 한 수를 읊조려 본다.

만사가 느긋하니 웃기는 일도 많다.

초당에 봄비 오기 사립문 닫았더니

뜻밖에도 갓 돌아온 발 너머 제비 녀석

날 보고 '왜 닫았냐' 따지고 드네그려.

'萬事悠悠一笑揮 草堂春雨掩松 生憎簾外新歸燕 似向閒人說是非' 위 시를 읊고 있노라면 산화야조(山花野鳥)는 물론, 천지만물을 모두 유정자(有情者)로 보아, 대화로 통정하는, 곰살궂은 인정의 소유자이고서야 가능한 일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진실로 자연을 사랑하는 은자의 진면목을 이에서 대하는 듯하다. 맑은 날에도 찾는 이 없는 산골 마을에, 비 오는 날 설마 하니 누가 찾으랴?

아예 사립문도 닫아걸고 초가집에 한가로이 누워 있노라니 문발 너머 귀에 익은 제비 소리. 그 제비는 요설꾼으로 오자마자 끝도 없이 사설을 늘어놓는다.

제비는 사람과 제일 친한, 권선징악을 일깨워 주던 새였다. 비록 공해에 시달려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처마 밑이건 보꾹이건 가리지 않고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주둥이 노란 새끼들의 지저귐은 우리에게 보은(報恩)의 화신으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것 아니냐?

제비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비단 공해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예부터 제비는 논어 학이장(論語 學而章)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그 뜻이야 '아는 것을 안다 하고 ,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니라.'이지만 일개 미물이 어리석은 중생을 타이르고 있으니 지난해 겨울 강남에서 논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선인들은 생각하였나보다.

한편, 제비는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줄줄 외운다고도 생각하였다. 시시비비비시시 비비시시시비비(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그렇다.'옳은 일은 옳다 하고, 그른 일은 그르다 해야, 그르고 옳은 일이 바르게 되건마는, 그른 일을 그르다 하고, 옳은 일을 옳다고 해도, 옳고 그른 일이 뒤틀려지네. 시비 거리에 대해서는 도통했다는 듯, 자못 세상을 조롱하는 강개함이 제비가 지저귀는 청각 이미지들로 대신하여 드러난다.'

지금은 초가집이나 발(簾), 사립문이 없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므로 현세에 맞도록 이렇게 고쳐 읽어 보면 어떨까.

만사가 나른하고 하던 일도 시들하다.

아파트에 봄비 오기 배란다문 열었더니

올해도 보이잖네 버티칼 너머 강남 제비.

날 보고 '또 선거냐' 단호한 메일 한 통.

그 메일 내용은 이러하다.

"2007년 코리아에선 대통령 선거가 있지. 선거야 올겨울에 치르겠지만 벌써부터 난리들이니 그꼬락서니 보기 싫어 가지 않을 테니 그리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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