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경화 ㆍ한국교원대 교수ㆍ수학

▲ 이경화 ㆍ한국교원대 교수
소설가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험한 세상을 억척스럽게 개척하면서도 고통스런 자신의 삶을 자녀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아랫목에 누워 자는 자녀가 행여나 깨어날까 봐 한밤중에 차가운 윗목에서 차렵이불자락에 입을 묻고 울음을 삼키던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과거에는 이렇게 아무리 삶에 찌들었어도 그 고통을 최대한 감추고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돌보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대학입시전략 관련 책에는 서울 대치동 어머니들의 자녀교육 노하우에 대한 것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고급정보가 상위권을 유지하는 원동력', '맞벌이 엄마와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 '학원 대기실에서의 적절한 행동강령' 등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생생한 사례와 함께 다루어져 있다.

지방의 많은 어머니들은 이 책을 통해 서울과의 정보격차(?)를 줄이고, 각 지역마다 '○○의 대치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훗날 어느 소설가의 작품에는 차렵이불자락에 입을 묻고 울음을 삼키는 어머니 대신 각종 입시정보를 수집하고 자녀에게 적용하느라 불철주야 바쁜 어머니의 희생이 그려질지 모른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한민국 어머니의 역할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자녀들이 어머니로부터 독립한 대학시절에 발생한다.

과거에는 가정형편이나 사회문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부족하여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무엇보다 대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기보다는 억지로 주어지는 공부만 하다가 기꺼이 재미없는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심각하다.

이제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대학공부 스케줄도 관리하고 대학공부를 도와주는 학원을 찾아다니는 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직업상 종종 공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여러 질문 중 가장 빈번한 것은 단연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이다.

초보 교수일 때에는 참 쉬운 질문이라고 그리고 공부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의도를 순수하게만 받아들여서 행복한 표정으로 "공부를 좋아하면 잘 하게 됩니다." 라고 답했다.

그런데 답을 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공부를 좋아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다시 날아오고, "공부함으로써 인류의 지혜가 가진 매력을 음미하고 자신의 사고력도 키워진다는 것을 알고…" 라고 답해봤자 "어떻게 하면 인류의 지혜갉" 하고 똑같은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요즘은 "스스로 공부하려는 사람만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라는 다소 무책임해보이고 소극적인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니 어머니들은 스스로 공부하려는 아이로 길러내는 역할만 하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사는 것이 그 자체로 공부 아니던가.

"아들의 천재성이 어디에서 오는가? 부모님이 모두 천재인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연소 대학 입학으로 널리 알려진 쇼 아노의 어머니 진경혜는 황당하듯 웃으며, "우리는 시와 음악을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드러낼 만한 일이 있다면 둘 다 무언가 배우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는 점뿐입니다." 라고 답했다.

쇼 아노의 놀라운 능력보다 홈스쿨링으로 그 능력을 감당해낸 어머니 진경혜의 담담한 교육관이 더 인상적이었다.

결국 공부하려는 아이로 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머니 자신이 아이 앞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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