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황혜영ㆍ서원대 교수 교양학과

▲ 황혜영ㆍ서원대 교수 교양학과
최근 수업시간에 김용옥이 해설한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학생들과 읽으며 물에 대해 음미해보게 되었다.

노자는 지극히 선한 것을 물의 이미지에 비유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물이 지닌 많은 미덕중의 하나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것이 나약함보다는 진정한 자신감과 용기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낮춘다'라고 하니 유비가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한낱 촌부에 불과한 공명의 초려를 세 번씩 찾아간 데서 유래한 '삼고초려(三顧草廬)'가 문득 떠오른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어렵사리 공명을 찾아가지만, 정작 공명은 못 만나고 공명의 친구들만 만나고 돌아온다.

공명의 태도가 못마땅한 장비의 투정을 애써 외면하고, 날이 차고 땅이 얼어붙은 날에 두 번째로 공명을 찾아가지만 이번에도 공명의 동생과 장인만 마주치고 또 허탕을 치고 온다.

세 번째 방문에는 장비뿐만 아니라 관우까지도 유비에게 지나치게 자신을 낮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래도 유비는 현자를 만나려면 그만한 예를 갖춰야 한다며 사흘 동안 목욕재계하고 다시 초려를 방문한다.

이번에는 마침 공명이 집에 있었지만 평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유비는 그가 일어날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한참이 지난 뒤 공명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다시 자자, 동자도 무안해 주인을 깨우려 하지만 유비가 또 만류한다.

마침내 일어난 공명은 그때서야 예를 갖추고 정중하게 유비를 맞이한다. 처음에 유비가 다녀갔다는 전갈을 받고도 공명이 답신도 보내지 않은 것이나, 두 번, 세 번 유비와의 직접 대면을 피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공명이 계획적으로 의도한 것이리라.

번거로운 걸음과 오랜 기다림 뒤에도 유비는 불쾌한 기색 없이 제갈공명에게 예를 다하고, 도움과 가르침을 청한다. 공명이 계속 사양하자, 유비는 눈물이 옷깃과 도포자락을 적시도록 울면서 거듭 간곡하게 부탁한다.

이에 공명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 유비의 청을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유비의 지우지은(知遇之恩)을 견마지로(犬馬之勞)로 보답한다.

까다로운 공명의 마음을 움직인 유비의 힘은 무엇일까? 지극한 정성도 정성이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낮아질 수 있는 능력인 듯하다.

유비는 자신을 완전히 숙일 줄 안다. 자기를 낮추면서도 그윽하여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물과 같은 덕이 바로 유비의 힘이다. 유비는 자기를 비우고 낮춤으로써 오히려 공명의 지혜마저 품게 되는 것이다.

청주 시내를 가르는 무심천에는 군데군데 나지막하고 폭이 좁은 보행자전용 다리들이 있다. 아담하고 정겨운 이 다리를 건너며 아래 물을 바라보다보면 다리 양쪽 물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임을 느끼게 된다.

물이 흘러내려간 쪽을 보면 쉬지도 않고 세차게 흐르는 물살이 윗물을 다 비울 것 같지만 위쪽을 보면 잔잔한 물결 아래 충만하기만 하다.

한없이 내어주어도 늘 충만한 무심천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울 때 그 안에 덕이 채워지나 보다.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행여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안색이 바뀌어 상대방이 오히려 무안해지게도 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를 낮춘다는 것, 머리로 알기는 쉬워도 그 실천이 어려운 것임을 절감한다.

그래도 다시 자신을 살피고 다듬어 가리라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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