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 송열섭 신부ㆍ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 송열섭 신부ㆍ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지난 해 6월, 교구청 마당을 거닐다가 갑자기 발을 멈추고 말았다. 주변을 압도하는 매미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초여름 그 작은 몸의 매미는 있는 힘을 다해 느티나무에서 울고 있었다.그 매미 소리가 얼마나 애절하던지 '인생을 헛되이 탕진하거나 대충대충 살지 마시오!'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유충으로 땅속에서 7년 정도를 지내다 밖으로 나와 지상에서 7일 정도 사는 매미이니 그 소리가 어찌 아니 절절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을 수 있을까! 들의 풀 한포기는 물론이고 매미와 같은 미물도 순간을 최선을 다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얼마나 더 잘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인생을 보람 있게 살려면 우선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신체구조로 볼 때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니 말이다.

성경에도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야고 1.19)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인간은 시각보다 청각이 먼저 발달한다.아이를 임신한 후 4개월이 되면 청각의 기능을 나타내어 외부의 소리뿐 아니라 어머니의 목소리와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어느 음악지도 선생이 학생들을 지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한 남성 사중창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똑같이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에요. 여러분 모두는 자신의 귀를 사용해서 주위의 사람들보다 크거나 작게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만 됩니다. 듣는 것을 배우도록하세요."

사실, 잘 들을 줄 아는 것은 사중창만이 아니라 교육, 종교, 경제, 정치 제 분야의 성공 열쇠가 아닐까!

잘 들을 줄 알아야 우선 가정부터 화목하게 되고, 소비자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기업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사회와 나라의 지도자들도 서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나라를 평안케 할 수 있다.

대부분, 비극이란 사람들이 듣지 않음에서 유래한다.

들으려 하지 않음은 자기 자신만을 또 자기 자신의 뜻이나 욕망만을 내세운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때문에 언제나 그것은 부조화를 낳는다.

청취에는 수준이 있다. 전혀 듣지 않는 '무시'가 있고, 듣는 척하는 '건성'이 있으며, 마음이 통하는 '공감'이 있다.

훌륭한 사람들은 잘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고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이웃들의 소리를 마음으로 잘 경청한다.

마음으로 경청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경청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의 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만, 하느님의 귀는 우리의 생각까지 듣습니다" 라고 한 바 있다.

하느님 '섭리(攝理)'라는 말에서 보더라도 귀 '이(耳)'자가 셋이다.

다툼과 오해, 원한과 불평을 넘어서서 인생을 보람되게 살려면 단순한 경청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청을 넘어서서 무언중에도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나아가 우리 내면에서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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