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문길곤ㆍ前청주연극협회장ㆍ극단 청사대표

▲문길곤ㆍ前청주연극협회장ㆍ극단 청사대표
창 밖의 비가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씻어주고 나니, 청주의 가로수길이 신호 한번 안 내어주고 길을 뻥 뚫어 준다.

'길' 난 문득 창 밖에 손 하나를 내어 본다. 시원한 바람이 손을 간지럽히더니 잡아보라고 속삭인다.

길을 따라 쫓아가는 바람을 잡아보니, 아카시아 꽃 내음이 어느새 내 손 안에 들어와 한 모금 먹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건넨다.

'길을 따라온 자연은 정말 맛있구나!' 그제서야 내가 가는 길에도 이런 맛있는 자연들이 반겨줌을 알고 마음이 든든해진다.

"문길곤씨는 왜 연극을 하십니까?" "Why?" 이젠 수없이 받아 본 질문이어서일까? 하하하…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짓고 만다. 가식적으로나마 "연극은 인생이죠!"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을 할 수 없다.

아니, 사실 대답할 말이 없다.아직도 멀고도 험한 길을 가고 있는데 내 어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연이 말해준 것처럼 맛있는 연극을 먹어보라고 미소만 지을 뿐!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난 두 달여의 고된 연습이라는 과정을 통해 막이 오르기 전의 긴장감으로 공연을 한다.

그리고 기어이 막이 내리면 '견딜 수 없는 허탈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난 연극의 맛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는 모든 일이 그렇듯 연극 또한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당신이 파트너에 대해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서로 관계가 좋을 때 파트너에게 많이 감사하고 그것을 비축해 두면 어려운 시기에 큰 도움이 된다. 감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힘든 시기가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런 시기를 큰 상처나 손상 없이 잘 넘기게 해주며 관계를 오히려 풍성하고 밀접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 뇔르 C.넬슨 <소망을 이루어 주는 감사의 힘>




내 파트너인 배우와 스탭, 관객에게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감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나역시 힘든 시기가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런 시기를 큰 상처나 손상 없이 잘 넘기게 해주며 타인과의 관계까지 오히려 풍성하고 밀접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장르의 예술을 종합하여 한 작품을 내 놓자면, 사람 됨됨이끼리 모여야 된다. 거기에는 '사람'들만이 모여져야 진정 순수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서로 사랑해야 감동적인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정말 감동적인 작품을 보았다고 느꼈다면, 그 작품은 만드는 과정이 순수했고 사랑으로 뭉쳐져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고 했던가?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말처럼 사랑은 내가 쏟은 만큼 곁에 정직하고 순수하게 머물러 있는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새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사랑하는 관계도, 연극도 그와 같다. 주고받기 식의 계산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가 쏟은 사랑만큼 더 깊은 신뢰를 지닌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예술인이 그렇겠지만, 연극을 오래 한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보면, 그 사람의 심성이 얼마나 순수하고 멍청할 정도로 맑은지 알게 될 것이다.

외모는 작업복 차림 으로 허술해 보여도, 내면에 차 있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연극을 해 온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난 연극을 한다" 애정과 사랑을 쏟는 열정적인 사람들과 작업을 할 때면 바로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은 연극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업보'일까? 일상적인 삶이 아니라 연극의 삶에 미쳐 난 내 갈 길을 가고 있다.

연극인이 아니면 해 볼 수 없는 타인의 삶.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일인가?

따뜻한 사람, 나쁜 사람이 되어보고,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리기도 하고 몇 년 혹은 몇 십년은 미리 늙어 볼 수도 있고, 심지어 외국인이 돼 보기도 한다.

결국 내가 가는 길은'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는 '연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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