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정덕기ㆍ충청남도 역사문화원장

▲정덕기ㆍ충청남도 역사문화원장
우리나라의 역사는 전형적인 승자의 기록에 의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려 중기 김부식에 의해 저술된 '삼국사기'는 오늘날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 기록서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것은 삼국사기 곳곳에 드러난 김부식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사대주의적 입장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을 처음으로 하나의 완성된 국가로 본 점, 역사 서술을 현실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 점, 지도층의 내분과 백성들을 억압하는 자들의 최후를 역사의 필연으로 기술한 점, 각국의 기사에서 그 나라를 1인칭으로 표현했다는 점 등등 긍정적인 면이 많음에도 삼국사기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사관은 삼국사기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는 신라가 사대를 하는 나라로서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해 사용한 것은 옳지 않고, 고구려가 멸망한 원인은 중원 왕조인 당나라에 대한 불손한 태도 때문이며, 백제 또한 전쟁을 일삼아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다고 평함으로써 사대주의적 입장에 입각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둘째,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의해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를 배제하고 있다. 철저하게 유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쓰여진 삼국사기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고 축소시켰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는 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 명칭만 언급하고 있을 뿐 향가들은 수록하지 않고 있다.

즉, 우리 고대 문화의 주류인 불교 문화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하지 않고 다만 중국의 고전과 고사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박학을 과시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화랑의 경우에는 이를 유교적 성격에 맞게 바꾸어 놓기까지 했다.

셋째, 삼국에 대한 역사 기록의 형평성이다. 삼국사기의 구성을 살펴보면 본기(本紀)의 경우 신라가 12권, 고구려가 10권, 백제가 6권으로 삼국에 대한 서술이 엇비슷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지(志)에 대해서는 신라의 것이 월등하고 열전(列傳) 또한 신라에 편중돼 있다.

물론 김부식이 신라 왕실의 후예이고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함으로써 좀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신라의 문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배려했어야 마땅 했다.

이렇듯 삼국사기에 나타난 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입장은 훗날 신채호(申采浩) 등의 민족사학자들로부터 민족의 주체성을 손상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이후 삼국사기로부터 시작된 이와 같은 중국 중심의 유교적 사관이 역사학을 주름잡게 됐다.

특히 의자왕에 대한 기록은 왜곡돼 있어도 한참 왜곡돼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몇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리던 그만한 업적을 남긴 왕이다. 그런데 갑자기 후반에 들어서 술과 여자에 빠진다는,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 갑자기 등장한다.

백제의 멸망한 예언을 보자면 사비하가 붉게 물들었다는 둥 개구리가 뛰어나와서 사람들이 이유없이 도망치다가 서로 밟고 그러느라 1백여명이나 죽고 재물을 잃었다라는 등 희한한 일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잘 해석해 보면 내부적으로 정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승자의 기록인 삼국사기는 그동안 여러번의 비판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던 비판이다. 선생이 저술한 조선상고사를 읽어본 일반인이나 역사학도들은 단재 선생이 김부식에 대해서 얼마나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올 가을 대백제전이 공주·부여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안그래도 자료가 부족한 백제의 역사, 이제는 바로 알고 알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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