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류 재 화- 괴산신기보건진료소장)



▲ 류재화 괴산신기보건진료소장 © 충청일보
시끄러운 님비주의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피천득의 인연 서두)2004년 적지 않은 세월 내가 몸담고 있던 진료소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전근명령은 내게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공무원은 누구나 한곳의 직장에서 평생을 일하고 그곳에서 정년을 맞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도 내가 근무지를 옮기는것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우리의 직종상 다른 공무원들처럼 사무실 용품 몇 개만 챙기거나 컴퓨터 자료 몇가지만 백업받아서 근무지를 옮기는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상주해야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이들은 진료소권역의 학교에 다니고 다른 가족도 모든 생활형태가 진료소 위주로 돌아간다. 전근 명령에 10여일간 이삿짐을 꾸리고마을사람들은 시시각각 찾아와 이별을 아쉬워하였다.한곳에서 10여년 묵은 내 삶의 실체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 마대에 담으며 살아온 나의 흔적이 이리도 많았던가 새삼 놀랐다.이것들은 이제 나와 인연이 끝난 물건들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소중한 많은것들을 미련없이 버려야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승을 떠날때의 내 마지막 모습을 생각해 본 것 같다.삶의 마지막엔 나 또한 모든것을 버리고 가겠지….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진료소 권역은 괴산의 핫이슈인 학생중앙군사학교 의 예정부지인 신기,사창 그리고 신항을 포항한 관동 5개리라 불리는 곳이다.학생중앙군사학교라는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기 힘든 주민들은 사나흘 꼴로 군청에 찾아가 우리는 받아들일수 없다, 아니면 우리의 요구조건을 들어달라 며 이 뜨거운 뙤약볕속에 농성을하고 군청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그곳이 최적지임을 강조한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하면 그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인다.마을 주민들이 데모를 하러간 날이면 허전한 진료소를 지키며 이동슈퍼의 요란한 소리나 마늘 사시오 썰렁한 마늘장사 소음을 나 홀로 듣는다. 간혹 어느 주민은 이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들어가면 우리들도 다 떠나야하는데 진료소장님 혼자 진료소에 있을 수 있을것 같냐며 엄포아닌 엄포를 놓기도 한다.그러면 나는 웃음으로 흘려 버리고 말지만 만일 주민들 말처럼 바로 코앞에서 훈련하는 총소리가 펑펑 울려도 초연할수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그러면 혼잣말로 무소음 총으로 사격연습을 하면 안될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본다.

괴산군에서는 학생중앙군사학교 유치로 인해 군부대가 아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학교, 방음벽을 갖춘 실내사격장으로 소음피해가 없으며 군사보호구역이 아니라 경계지역외에는 일제의 행위 제한이 없음을 홍보한다.우리지역의 농산물을 훈련생에게 납품하여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괴산군 발전에 초석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것 다 좋은데 하필이면 왜 내가 사는 곳이어야 하는가 님비주의를 외치고 있다.

한낮의 태양은 그들의 마음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빨리 이 쟁점이 마무리되어 주민들도 나도 우리 군(郡)도 일상의 평온을 되찾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얼마전 작고한 피천득 선생님은 9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지극히 검소하고 간소하며 욕심없는 삶을 살다가 가셔서 많은 문학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의 글들 또한 간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인연이 아니면 버리는 것.그 간소함 단순함이 마치 100수를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가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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