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동욱ㆍ충북과학대 교수 통신공학ㆍ산학연 전국협의회 부회장

▲조동욱ㆍ충북과학대 교수 통신공학ㆍ산학연 전국협의회 부회장
내가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아련한 추억중 하나가 바로 여름방학이 되면 강원도에 사시는 고모 집에 놀러 가는 것 이었다.

서울에서만 자란 필자 입장에서는 시골 강가에서 수영하고시골에서 먹어 보는 밥이 어쩜 그리도 맛이 있는지 밥 한 그릇 먹어 치우는 것은 눈 깜짝할 순간 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것은 우리 고모부는 아무리 서울에서 많은 것을 선물로 가져다주었어도 놀러 간지 2일만 지나가면 은근히 밥 먹을 때 눈치를 주셔서 고모부에게 잘 보이고자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서 잡초 뽑기등을 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40여년전 그 당시는 차가 없던 시절이라 청량리역에서 기차타고 내려서 밤길에 지나가는 트럭 세워 얻어 타고 고모집으로 가곤 했다. 지금만 해도 사람 무서워 절대 안 태워 주었겠지만 그 당시는 그래도 사람을 믿고 태워주는 세상이었다.

또 아주 가끔 가는 고모집이라서 집을 기억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도 동네 근처에서 '여기 선화네 집 어디예요?'라는 물음 한 마디에 집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는 인정이 살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청주와 제천은 새 주소 체계가 시행되었다. 소위 기존의 주소 체계에서 도로 이름중심의 주소 체계로 바뀌었다.

이는 외워야 할 도로명이 너무 많고 건물번호에 연속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잘 만 정착되면 집 찾기가 지금 보다 수월하게 되어 연간 4조 3000억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주소 체계가 미국인데미국의 주소 체제는 스트리트(street)와 애비뉴(avenue)이며 통상 스트리트와 애비뉴가 직각으로 교차한다. 뉴욕의 경우 남북으로는 애비뉴,동서로는 스트리트이다.

이는 미국이 정착 문화가 아닌 이동 문화였고 워낙 땅이 크다보니 주소 체제를 그리 잡은 것 같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정착생활을 했고 땅이 작아 그런 주소 체계가 필요치 않았다.

다시 말해 동네 근처 가서 '여기 선화네 집 어디예요?' 라는 물음 한 마디면 집 찾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주소 체계는 쉽게 집을 찾을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었지만 이를 우리 동네와 우리 동네 사람들 간의 끈끈한 정(情)과 사랑으로 집을 찾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던 것 이었다.

내 집 사람과 내 아이조차 공동체 개념인 우리 집 사람, 우리 아이로 부를 만큼 하나의 마음으로 정을 가지고 살았는데 아파트가 들어 와 우리 동네를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바꾸어 놓더니 이제는 아파트뿐 아니라 모든 주소 체계가 바뀌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 찾는 작업이 '은경이네 집이 어디예요' 대신에 현화아파트 101동 1413호로 바뀌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모든 주소 체제가 바뀌니 사람 사는 게 왠지 행정적, 사무적으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정이 없어져 버릴 것 같다. 아파트가 확산되면서 나타난 문제점이 우리 동네라는 개념·문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앞집에 사는 분과도 교류가 없는 것이 아파트 문화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이를 넘어서 도로명 중심의 주소체계가 들어서니 우리 마음이 정(情)대신 도로명을 중심으로 한 획일적인 코드가 자리를 잡게 되는 것 같아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꼭 효율화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여기 선화네 집 어디예요?'라며 고모집을 찾아가던 시절의 정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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