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선 칼럼

미술계의 `가짜 박사`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고등학교 졸업 외에 학사ㆍ석사ㆍ박사학위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난 신정아 동국대 교수 얘기다. `가짜 학위`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녀는 잘 나갔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큐레이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교수가 됐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 자리까지 손에 쥐었다.

학위 이력과 경력만을 보면 그녀의 성취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녀는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의 일을 하면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욕심이 지나쳤다. 멈춰야 할 때를 놓쳤다.

`가짜`의 심리적 기제는 `확장성`이 특징이다. 작은 거짓으로 재미를 보면 , 방어적이든 공격적이든 그 거짓을 `진짜`로 믿게 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계속 저지르는 것이다. `리플리 효과`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신 교수 파문을 다루면서 제목을 `재능 있는 신정아씨(The Talented Mr. Shin)`라고 했다.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99년에 리메이크한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 )를 빗댄 것이다.

`재능 있는 리플리씨`에서 멧 데이먼이 맡은 주인공 톰 리플리는 호텔 종업원이다. 그런데 사소한 거짓말로 아이비리그 출신의 재벌가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와 만나면서 인생이 바뀐다. 그린리프의 삶을 동경한 리플리는 점점 더 대담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를 죽이고, 그가 되어, 그의 삶을 산다. 신 교수는 아직도 자신이 틀림없는 `예일대 박사`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딱한 일이다.

`가짜`가 신 교수의 경우처럼 학력위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가짜`가 도사리고 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명품을 흉내 내는 `짝퉁`이 있는 것처럼, 그 `짝퉁`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왜일까.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사회적 기준`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아니, 외려 사회가 `가짜`를 조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참 모습`은 알려하지 않은채 명문이라는, 명품이라는 `껍데기`에 집착하는 잘못된 풍조가 `구조적 악(惡)`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대선 정국이 점차 혼탁해지고 있다. 정치판에도 `가짜`들이 많기 때문이다. 판세가 불리하자 탈당을 하고,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도리어 `음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도 정신 못 차리고는 또 나서겠다고 하고, 내가 나가면 상대방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다고 막말이나 하고, 허황된 공약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권력 주변에 머물며 이삭이나 줍다가 어느날 갑자기 대선출마 어쩌고 하고, 이 모든 게 화려한 포장 속에 숨어 있는 `가짜들의 진짜 모습`이다.

가짜들은 이제라도 지금까지의 성취에 만족하고, 더 이상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길 바란다.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물러나길 권한다. 국민들에 의해 가짜라는 게 `들통`날 때의 `참혹한 자신`을 떠올려보라.



/어경선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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